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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쿠마라는 회사하고 사업을 했다가 해방이 되어 일본과 교류가 끊어지자 작업이 중단
되었다가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나서 다시 거래를 했다. 홀치기는 일본 말로 시보리라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입는 기모노 만드는 원단에다가 무늬를 넣기 위해 실로 뜨는 것
이었다.홀치기된옷감을일본에서염색하여옷을만들어팔았다.그러니까홀치기는원
료를가공하는일종의보세가공이라볼수있었다.
홀치기는 국교가 정상화되기 전인 62년부터 민간 차원에서 원단을 수입하여 작업을
하였다. 그래서 그가 학교를 졸업한 해부터 큰아버지가 하는 홀치기 사업을 1년 반 정도
도와주다가 군대에 입대하였다. 군대에서 휴가 와서 보니까 처음 시작할 때보다 엄청나
게번성하였다.
일본 오사카가 섬유도시라 홀치기 하는 회사가 많았고 교토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서는 그곳에서 물건을 받아 홀치기를 하여 전량을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당시에는 충청
남도강경과경상북도대구가대부분의일을다하였다.
홀치기도 수출 산업이라 수출 기한을 지키는 것이 무척 중요하였다. 원단이 몇만 장씩
나오면 그것을 홀치기 하는 가정으로 분배한다. 출장소나 회사가 있으면 총대리점 총대
가 있고 반장이 있다. 그 총대는 많은 양을 갖다가 반장한테 나누어주면 반장은 자기가
관리하는 동네에 나누어 준다. 만약에 10월말에 선적을 해야 한다면 일본에서 강경으
로보내준원단을 집집마다나누어 주고 기한에 맞추어 다시 수거해 와서 검수하고 포장
하여 일본으로 보내 주었다. 어쩌다가 불량품이 나와 일본 본사에서 클레임을 걸면 변
상해 주기도 하였다. 또 여러 집에 나누어주다 보니까 수거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한
번에 5% 정도는 분실했다. 그러면 일본에다 변상을 하였고 우리나라에서 원단을 짤 수
있게되었을때는다시원단을구입하여다시짜주기도하였다.
홀치기는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느 동네에 어떤 홀치기를 하고 어느 동네에서
는 어떤 홀치기를 잘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면 직접 홀치기 틀을 들고 동네를 다니면서
분배를 해 주었다. 일본에서 원단이 들어오면 직접 바쁘게 다니면서 나누어 주고 또 걷
어오고 하였다. 원단에다가 꽃이나 구름을 그리고 점 하나하나를 홀치기 틀에 넣고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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