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83페이지

405페이지 본문시작

소에서 공부를 했었다. 지금의 경찰서 옆에 강남젓갈 자리에 커다란 창고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6학년 때까지 공부를 했다. 그 창고는 아주 커서 칸막이를 해서 공부를 했다. 그
렇지만 전체 학생들이 다 못 들어오기 때문에 분산되어 공부를 했다. 일부는 강경상업
고등학교에서공부하였고,그옆에목욕탕자리에서도공부했다.
그가 학교 다닐 때 많은 학생들이 잘 먹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다행히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 입대 전에 우체국에 입사했다. 1960년대 초라
고 기억되는데 전신계, 우편계, 환금계, 교환 등 모든 업무가 한 군데에서 처리되었다. 처
음 들어간 곳이 통신 계통으로 소년 전배를 했다. 소년 전배는 우체국에서 어린 사람들
을뽑아서전보를배달하는일을맡기는것이었다.
군대 제대 후 결혼하고 나서 맡은 일은 우편 배송이었다. 우편물을 전부 수합해 벌집
통 같은 분류함에 주소별로 나누어 넣는다. 다른 지역으로 가는 우편물은 목적지를 적
어서 기차로 보내고 기차로 온 것은 분류해서 배달을 하였다. 강경우체국의 관할은 서
쪽으로는 서천, 장항, 북쪽으로는 부여 석성, 남쪽으로는 전라북도 망성면까지였다. 충
청남도에서 가정 먼저 생긴 우체국이라 규모도 컸고 담당하는 지역도 매우 넓었다. 강경
관할은 강경우체국에서 배달을 한다. 그러니까 강경 시내는 직접 배달을 하고 다른 곳은
분류해서 우편물 뭉텅이로 보내준다. 그러면 우편물을 받은 곳에서는 다시 분류를 해서
각 집으로 배달을 한다. 강경우체국은 담당하는 지역으로 우편물을 보내주는 일까지 하
였다.
우체국의 위치는 일제강점기 때 북옥동 교회 자리였는데 지금 건물을 뜯어서 교회 주
차장으로 쓰고 있다. 그러니 일제강점기 때부터 우체국 규모가 매우 컸었다. 한국전쟁
때 우체국 건물이 불이 나서 다음으로 태평동으로 이전을 했다. 그곳은 임시 건물이라
공간이 부족해서 세무서 자리에서도 일부 업무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황산동으로 자리
를옮겼다.
서창동 건물을 지을 때 직원이 가장 많았다. 1층에다가 사무실을 만들고 굵은 각목을
이용해서 2층을 올렸는데 이층이 내려앉았다. 나무가 휘니까 너무 위험해서 파이프를
논산시 403

40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