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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탁의 자는 자온(子溫)이다. 집안에 전하는 바와『신정아주지』
의 기록 등에 따르면 백암리에 살고
있던 전주이씨 이견석(李堅石)의 권유로 백암리에 자리 잡았다고 하며 민탁은 이견석의 사위 혹은 손
자사위라고 하는데 확인되지 않는다. 시기는 약 500년 전인 1510년경으로 추정한다. 어모장군으로
행충무위부사직을 지냈고 족보에 사직(司直)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후손들이‘사직공’
이라 칭한다.
민탁의 묘는 음봉면 신수리 숯골의 도장골에 모셔졌으나 현재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는 아들 희삼(希參)을 두었으며 민희삼(1515~1611)은 명종 7년(1552)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민희삼의 아들 민계(閔溪)는 봉사를 지냈고 민계의 아들 민사성(閔師聖)
은‘아산 8문장’
에 들었다. 이처럼 민탁이 자리 잡은 뒤 후손들이 가풍을 세우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
민탁이 처음에는 백암리 구무골에 자리 잡았다가 화재로 인해 백암리 새터로 옮겨 오랜 동안 거주
하였으며 수백년 뒤인 1800년경에 후손들이 염치읍 동정리 학대(현재 염티 저수지 수몰지)로 이주하
였다. 일부는 천안 목천으로 이주했다가 뒤에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현재 후손들은 염치읍을 중심으
로 온천동, 수원, 인천, 서울 등 각지에서 살고 있다.
[41] 밀양박씨 박계영
| 朴啓榮
< ? ~ ? >
밀양박씨(密陽朴氏) 57세이며 승지공파(承旨公派) 영인면 신봉리 입향조이다. 참봉(參奉) 박영원
(朴永元)의 손자이며 할머니는 단양장씨(丹陽張氏)이다. 박계영의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묘는 영인면 신봉리 도장재 가족 묘역에 있다. 후손은 온양을 비롯한 수도권에 산다. 제사는 음력
10월 셋째 주에 지낸다.
[42] 함양박씨 박수현
| 朴壽賢
<1612년(광해군4년)~1699년(숙종25년)>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함양박씨(咸陽朴氏) 16세이며 오한공파(五恨公派) 아산시 지역, 송악면 거산
리 입향조이다. 선대는 전남 영암 군서면 일대에 거주하였다. 현재 송악면 외암2리에 거주하는 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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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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