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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청양토박이들의생애사!
레 먹고 그랬어유. 참 여기가 유명했지유. 그때 나는 어렸지유. 형
님이 두레는 주로 했고. 아버지가 대전에 두레 치러 갈 때에 차로
모시고 다녔지유.
옛날에 호미로 맸는데, 저도 했시유, 아시, 두물, 그러고 나중에
만물은 호미로 안 하고 손으로 해유. 아시와 두물 때에 두레를 쳐
유. 옛날에는 풍장이라고 했지유. 그 다음에 풀물이란 말을 썼지
유. 한번 맬 때에 일주일 이상 걸리지유.”
안심리의 두레는 남자들만이 참여했으며, 대략 17~18세부터
참여했다. 여자들은 참여하지 않고 대신 음식이나 참, 막걸리
를 내오는 일을 맡았다. 대략 60~70명 정도가 참여했으며, 다
른 동네에 비해 규모가 큰 편이었다. 안심 1, 2리에서만 할 때
에는 20~30명 정도만 참여했다. 두레가 없는 본의실에서는 안
심리에 돈을 내고 두레를 의뢰한 적도 있다.
“두레 논 맬 때에는 남자들만 했지유. 집집마다 남자들이 참여
했는데, 한참 장정들이 하는데, 스무 살도 가고, 열일곱, 여덟살만
되면 다 가유. 옛날에는 학교를 못 가고 다 지게 지고 산에 나무하
러 갔잖어유? 소 다 풀 먹이고, 초등학교 졸업하면 다 일 해야지
유. 오십 넘으면 두레를 빼 주고. 여자들은 음식 내가고, 참 내오
고, 그때는 동이에다 막걸리 이어 오고. 그냥 된장 수제비 해서 먹
고. 술하고 음식은 그 집에서 내고. 두레 먹을 때에는 마을 공동으
로 하고. 본의실 같은 데서 오면 다만 얼마라도 내고 같이 술 먹고.
그 때는 만물 하면 농사 다 지은 거지요. 여기가 한 육칠십명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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