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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원이었던 김범명의 선거 공약에 대학 설립이 있었으나 막상 당선되고 나서는 추진하
지 않았다. 그래서 김범명에게 강경에 기능대학을 설립해 달라는 청원서를 냈다. 기능대
학은 노동부 소관이라서 노동부에도 제출했다. 그러나 아무런 답신이 없었다. 후에 이
대학 문제를 김범명이 동의하여 노동부장관을 만나 기능대학을 강경에 설립하겠다는
확약을받았다.
이전을 계획하던 한전지점도 그대로 강경에 존속하게 되고 대학까지 설립한다는 내용
이 신문에 보도되어 강경읍민들은 크게 고무되었다. 그러나 대학 설립에 관하여 추진되
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시 강중선 시의원과 함께 노동부에 찾아가 독촉하였다.
그래서 기능대학 학원 이사들이 현지답사를 하였다. 강경읍 산양리에 있는 공동묘지에
학교를 짓기로 하였는데, 공동묘지에는 대략 3만 기의 묘지가 있었다. 그중에는 연고자
가 밝혀진 유연(有緣) 묘지도 있지만 무연(無緣) 묘지도 상당수가 있었다. 경기도 의정부
까지 묘지 연고자를 찾아가서 묘지를 이전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무연 묘지가 더 큰 문
제였다.그래서그처리방법을열심히공부하고연구하여해결하였다.
묘지 이전 문제는 논산시에서 담당하고 있었지만, 조속한 해결을 위하여 그가 적극적
으로 나선 것이다. 그렇게 열성을 보인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불을 질렀으니 불이 잘
타도록내가불쏘시개노릇을해야지요.”라고말했다.
2004년에는 강경경찰서(현 논산경찰서)와 법원, 검찰청을 논산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강경경찰서는 한국전쟁 때에 경찰관 83명이 순국한 역사적 장소이고, 경찰
서를 비롯하여 법원과 검찰청이 이전하면 강경이 급속히 쇠퇴할 것으로 예측하여 강경
읍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번영회장을 하면서 개인 돈을 많이 써 가면서 헌신적으로 번
영회장 직무를 수행한 것을 읍민들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 경찰서와 법원, 검찰청
의강경존속을위한투쟁을담당하는삼청사강경존속추진위원장을맡아야만했다.
이런 난국을 해결할 사람으로 그가 가장 적합하다고 읍민들이 뜻을 모았다. 그는 다
시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을 추진하기 위한 자금은 한 푼
도 없었다. 그런데 그가 위원장에 취임하자 돈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몇백만 원의 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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