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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서훈신청을 하였다. 그리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을 수 있었다. 이어서

남,
1994년 11월 16일 꿈속에나 그리던 김관룡 할아버지를 동암리 선산에서 국립대전현충원


에 모시게 되었다(독립유공자 묘역 2-290). 대전현충원 안장식에는 열 분의 애국지사가


한꺼번에나란히안장되었다.


그런데 김영배 님 가족이 가장 많았고, 다른 애국지사에게는 가족이 한두 명에 불과한


분도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실감 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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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김영배님도당신까지는많은고생을하였으나,자신의다음대부터는점차안정을찾
아가는 중이라 하였다. 손자 중에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직 종사자도 여럿 있으니 다행이
라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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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의 김영배 님은 정말 바쁘다. 그중 한 가지는 노인봉사 활동이다. 인천지역
노인문화센터,복지관등에서역사교육과한글지도를병행하였다.특히문맹할머니들에
게 한글을 가르쳐 한글을 깨우치게 하였고, 그분들로 하여금 자서전을 쓰게 하여 인천문
화원에서전시회도가졌다.문맹을깨우친할머니들은시내버스의노선표를읽게되었고,
마음대로이동할수있게되었다.또한숫자를터득함으로써통장관리를스스로할수있
게되었고,재산도모을수있게되었다.할머니들은스스로사람이되었다고생각하게되
었고, 김영배 님을 정말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김영배 님의 봉사활동 실적은 각종 노인봉
사 경진대회에 나가게 했고 인천광역시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였다. 그 결과 일본 노인시
설을둘러보는호사를누렸다고한다.그위에노인의교통봉사,공무원환경정화활동도
부수적으로진행하였다.
최근에겪은가장보람찬활동은인천지역각급학교에강의를나가는일이었다.이것은
인천교육청과광복회인천지부의업무협약결과였다.인천지역초중등학교에독립운동사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를 하였다. 강사의 조건은 교사 출신으로 수업 기술이 있어야 하고,
독립유공자 후손이거나,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 출신이어야 한다. 인천교육청은 관내
모든 학교의 희망을 받아 교과를 개설하였다. 강사는 5명으로, 1인당 한 달에 20시간 정
도배분되었다.김영배님도김관룡애국지사의직계장손이며교사출신으로수업지도안
을 준비하여 강의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학생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독립운동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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