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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그가신원사업이라는회사를설립하여사업을시작했다.전분공장에서전분을추출
하고 나오는 고구마와 옥수수의 찌꺼기를 이용하여 가축 사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성분을 배합하는 것을 배합 사료라고 하고, 그 한 가지만으로 만드는 사료를 단미
사료라고한다.
그는 사료공장을 하다가 사업에 실패하였다. 직원의 소개로 익산에 있는 하림식품을
찾아갔는데 사장이 고등학교 후배였다. 선후배 관계라 사장이 적극 지원하여 통닭에 사
용하는 소스 공장을 창업했다. 회사의 이름은 부인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지어 주
었는데, 주님이 경영하는 회사라고 하여 주영식품이라고 정했다. 이 사업으로 성공하여
사료공장을하면서발생했던부채도완전상환하고다섯딸들을교육시킬수있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그는 지역의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초등학교의 육성회장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 중학교의 육성회장을 했다.
그럴 즈음에 쇠퇴하는 강경을 부흥시키기 위한 강경 되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동
안 그는 강경 지역의 일을 맡아 하면서 좋은 평판을 받아 1998년에는 강경번영회장을
맡았다. 번영회장은 2003년까지 6년간 재임했다. 그는 그때를 회고하면서, “제가 마치
강경을 되살리는 기수인 양 활동을 했습니다.”라고 회상할 만큼 열정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충남지사를 만나서 강경의 금강둔치 개발을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과장이 공주
에 이미 둔치 개발을 했었는데 기대 효과에 못 미쳐서 실패했다고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강경은 접근성이 좋아 성공을 확신한다고 도지사를 설득하여 마침내 개발이 이
루어졌다. 2001년도에는 그동안 강경의 학교에서 하던 젓갈축제를 개발이 완료된 금강
둔치에서 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렇게 조성된 금강둔치는 야구, 롤러스케이트 등
이 가능하고 그 외에 여러 가지로 이용되었다. 어느 날은 유치원생들이 금강둔치로 소풍
을와서노는것을보면서눈물을흘리기도했었다.
금강둔치 개발 사업을 성공리에 마치고 그는 큰 보람을 느꼈다. 지역을 위해 또 무슨
일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던 끝에 강경에 대학을 설립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당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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