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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20일 태안의 흥주사(興住寺)에서 입적하였다. 산사 주지로 활동하던 시기의


일화중특별한것은예산읍3층석탑을되찾은일이었다.원래이탑은덕산가야사지에있



던 것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일본으로의 반출을 시도하였다. 김관룡 지사는 이 사실을


알고탑의반출을제지하여예산군청으로되찾아왔다.이탑은2000년보덕사경내에이


전하였고현재경내에세워져있다.





김영배 님이 김관룡 지사를 다시 뵌 것
은 1960년대일 것이다. 해미면 동암리에
서해미초등학교와해미중학교를마친김
영배님은어머니께서작고하시자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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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주지로계신다는당진시고대면진관
리의 영랑사를 찾았다. 그리고 할아버지
의보살핌아래당진상업고등학교를졸업
할수있게되었다.이후성인이된김영배
님은대림택시라는택시회사에근무하면
서 생계를 유지하였고,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하여 틈틈이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
러던 1966년경, 인천교대부설 교원양성소
를 졸업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교사로 임
그림6 예산읍 삼층석탑. 보덕사 경내에 있으며 안내판 내
용되었다.첫부임지는평택시오성면에있
용을 다음과 같다. ‘불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실제사리를모시지않았더라도부처님을모신신성한곳으
는오성초등학교였고,줄곧인천에머물면
로여겨져사찰안에서상징적으로중요한공간이라고할수
있다.이삼층석탑이언제처음만들어졌는지자세히알수
서 인천 약산초등학교(남동구 간석로 26)
없으나극락전앞에있는석등과함께인근의가야사지에있
에서평교사로40년간의교편생활을마감
었던것으로전한다.일제강점기에일본인이몰래일본으로
가져가려던 것을 당시 보덕사 주지였던 관용 스님이 찾아
하였다.
와 예산군청에 보관(당시에 문화재 지정 1984.5.17)하다
김영배 님은 김관룡 지사에 대한 선양
200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4개의 판으로 구성
된받침돌위에단층의기단을만들고3층으로이루어진몸
사업도 계속하였다. 우선 1990년 조부의
돌을그위에올려놓았는데,원래는5층이었으나일부훼손
독립운동과 수형 사실을 조사하여 보훈처
되어지금은3층만남게된것으로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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