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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졸업대장에서제외되었다.수옥교장의횡포와억압의결과였다.이때문에현재해


미초등학교 졸업 대장에는 김관룡 지사를 제외한 졸업생 10명의 명단만 나와 있다. 어쨌



든졸업식을마친김관룡지사는졸업후의미래를구상하게되었다.엄혹한식민지의현실


속에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그런데 이즈음 독립의 ‘봄’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에서


촉발된독립선언은만세운동으로발전되었고,들불과같이전국으로확산되고있었다.해


미에서도 3월 19일 남상철(南相喆)이 주도한 만세운동이 한차례 휘몰아친 바 있었다. 김



관룡지사의마음도용광로처럼타오르고있었다.
이계성(李啓聖)이김관룡지사를찾아온것은3월24일이었다.마침이날은해미보통학
교졸업생과재학생의고별식이해미읍내에서예정된날이었다.이계성이찾아온목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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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아닌만세운동건이었다.긴장된순간이었다.이계성은김관룡지사의해미보통학교
1년선배로4회졸업생이었다.나이는이계성이1901년생이니오히려김관룡지사보다한
살 어렸다.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해미면사무소에 있는 해미저축조합 서기로 근무하고
있었다.또한그는해미면기지리출신으로,3월16일에일어난서산읍내만세운동과3월
19일에일어난해미읍내만세운동에이미참여하였다.나아가독립선언서와태극기를입
수하여 자신이 근무하는 해미면사무소에서 다량으로 복사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
었다.이계성은김관룡의의협심을인정하고있었고,김관룡은이계성의제안을흔쾌히승
낙하였다.이때이계성은다음과같이말했다고판결문에기록되어있다.“다른학교에서
는 조선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서만 이를 부르지 않음은 매우 유감스럽
다.고별식이있는오늘밤에만세를부르자.”라고.
김관룡지사는이계성과함께동기생인유세근(柳世根),김연택(金然澤)의동의를얻어
낸 후에 저녁 7시경 고별식(告別式)이 열리고 있는 해미 읍내 음식점으로 갔다. 이곳에는
졸업생은물론,재학생다수가참석하고있었다.김관룡지사는이곳에서동기생과후배들
에게다음과같이말했다.“고별연이끝난뒤에일동은해미면사무소앞과기타지역에서
조선독립의운동방법으로독립만세를불러야한다.만약이에참가하지않는다면구타
할것.”이라고하였다.의혈남아로서김관룡지사의기개가엿보이는장면이다.그리고밤
11시경,김관룡지사를비롯한십수명의학생들은해미면사무소앞과우(牛)시장에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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