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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내용(contents)
추사가대흥사의아암(兒岩)스님의수제자인기어자홍(騎魚慈弘)과수룡색성(袖龍?性)두스님
에게보낸현판글씨이다.제기(題記)의내용을보면,담계(覃溪)옹방강이당나라때의시인백낙
천의동림고사(東林故事)를이용해자신의『복초재집(復初齋集)』을항주의영은사(靈隱寺)에소장
케 했는데, 추사 자신도 『복초재집』을 해남의 대둔사(大屯寺 : 대흥사)에 기증하여 소장케 하고,
.
이에이란세글자를홍
색두스님에게써준다고했다.동림고사란백낙천이자
신의『백씨문집(白氏文集)』50권본이후의것을모아『백씨후집(白氏後集)』20권을편하여동림사(
東林寺)에영구보존케한사실을가리킨다.추사의30대글씨로추정되며,전형적인옹방강풍의
22)
해행글씨이다.이편액은추사와옹방강,추사와초의선사의관계를잘보여주는자료이다.
98.구륵본과추사의예서
ㆍ개요(synopsis)
배잠기공비는 전한시대 배잠의 공을 기린 공덕비이다. 이 비의 구륵본이 있는데 옹방강의 소재
에서나왔다.추사는예전에들었던말을써서묵연을기록한다하였는데추사체의연원을살펴
볼수있는명품이다.
ㆍ내용(contents)
배잠기공비구륵본(裴岑紀功碑鉤勒本)은쌍구(雙鉤)로뜬글자의여백을먹으로점을찍듯이하여
탁본한맛이나게하였으며,전한(前漢)순제(順帝)영화(永和)2년(137년)에돈황(敦煌)의태수를
지낸배잠(裴岑)의공덕을기린공덕비(功德碑)이다.이구륵본(鉤勒本)은소재(蘇齋:옹방강)에서
나온것으로아울러예전에들었던말을써서묵연을기록한다고하였다.예서(隷書)에서서한(西
漢)으로거슬러올라가기교밖의천진(天眞)을구했던김정희글씨의연원을살펴볼수있는명품
이다.추사가쓴제기(題記)는다음과같다.
이것은한나라돈황태수배잠의기공비이다.서새(西塞,서역新疆城)파리고리성(巴爾庫爾城)서
쪽50리거리에있다.동네이름이석인자(石人子)인데그것은이비석의생김새가위쪽이뾰족하
고아래쪽이굵어마치죽순처럼우뚝해멀리서바라보면성닌같기때문이다.옹정7년(1729)대
장군악종기(岳鍾琪)가발견하여이비석을장군막부에옮겨놓았다가다시한수정후묘(漢壽亭侯
廟,관운장사당)에옮겨놓았다.
옹방강이말하기를한나라석각(石刻)은영평6년(63)의가가장오래된것이고
다음으로는 한나라 화상전(畵像塼)의 영건 4년(129) 소선군자(邵善君字)가 있고 그 다음으로 이
비가오래된것이라고했다.그러나애석하게도이비가위치한지역이멀고탁본솜씨가정교하
지못하니처럼정탁(精拓)하여주(周)나라석고문(石鼓文),진(秦)나라전서(篆書)에비하
겠는가.
이것은구륵본이다.비의소재지가만리밖이라탁본이극히어렵고증각본(重刻本)하나가있기
는 하지만 진본(眞本)과 거리가 멀어 진본을 정밀하게 모사한 것만 못하다. 더구나 이 구륵본은
23)
소재(蘇齋)옹방강에게서나온것이다.옹방강에게들었던말을곁들여묵연(墨緣)을표한다.
22)과천시ㆍ한국미술연구소편,『추사글씨탁본전』,2004,76~77쪽.
23)유홍준,『완당평전』2,학고재,2002,450~452쪽.
2016 50호 39
추사가대흥사의아암(兒岩)스님의수제자인기어자홍(騎魚慈弘)과수룡색성(袖龍?性)두스님
에게보낸현판글씨이다.제기(題記)의내용을보면,담계(覃溪)옹방강이당나라때의시인백낙
천의동림고사(東林故事)를이용해자신의『복초재집(復初齋集)』을항주의영은사(靈隱寺)에소장
케 했는데, 추사 자신도 『복초재집』을 해남의 대둔사(大屯寺 : 대흥사)에 기증하여 소장케 하고,
.
이에이란세글자를홍
색두스님에게써준다고했다.동림고사란백낙천이자
신의『백씨문집(白氏文集)』50권본이후의것을모아『백씨후집(白氏後集)』20권을편하여동림사(
東林寺)에영구보존케한사실을가리킨다.추사의30대글씨로추정되며,전형적인옹방강풍의
22)
해행글씨이다.이편액은추사와옹방강,추사와초의선사의관계를잘보여주는자료이다.
98.구륵본과추사의예서
ㆍ개요(synopsis)
배잠기공비는 전한시대 배잠의 공을 기린 공덕비이다. 이 비의 구륵본이 있는데 옹방강의 소재
에서나왔다.추사는예전에들었던말을써서묵연을기록한다하였는데추사체의연원을살펴
볼수있는명품이다.
ㆍ내용(contents)
배잠기공비구륵본(裴岑紀功碑鉤勒本)은쌍구(雙鉤)로뜬글자의여백을먹으로점을찍듯이하여
탁본한맛이나게하였으며,전한(前漢)순제(順帝)영화(永和)2년(137년)에돈황(敦煌)의태수를
지낸배잠(裴岑)의공덕을기린공덕비(功德碑)이다.이구륵본(鉤勒本)은소재(蘇齋:옹방강)에서
나온것으로아울러예전에들었던말을써서묵연을기록한다고하였다.예서(隷書)에서서한(西
漢)으로거슬러올라가기교밖의천진(天眞)을구했던김정희글씨의연원을살펴볼수있는명품
이다.추사가쓴제기(題記)는다음과같다.
이것은한나라돈황태수배잠의기공비이다.서새(西塞,서역新疆城)파리고리성(巴爾庫爾城)서
쪽50리거리에있다.동네이름이석인자(石人子)인데그것은이비석의생김새가위쪽이뾰족하
고아래쪽이굵어마치죽순처럼우뚝해멀리서바라보면성닌같기때문이다.옹정7년(1729)대
장군악종기(岳鍾琪)가발견하여이비석을장군막부에옮겨놓았다가다시한수정후묘(漢壽亭侯
廟,관운장사당)에옮겨놓았다.
옹방강이말하기를한나라석각(石刻)은영평6년(63)의가가장오래된것이고
다음으로는 한나라 화상전(畵像塼)의 영건 4년(129) 소선군자(邵善君字)가 있고 그 다음으로 이
비가오래된것이라고했다.그러나애석하게도이비가위치한지역이멀고탁본솜씨가정교하
지못하니처럼정탁(精拓)하여주(周)나라석고문(石鼓文),진(秦)나라전서(篆書)에비하
겠는가.
이것은구륵본이다.비의소재지가만리밖이라탁본이극히어렵고증각본(重刻本)하나가있기
는 하지만 진본(眞本)과 거리가 멀어 진본을 정밀하게 모사한 것만 못하다. 더구나 이 구륵본은
23)
소재(蘇齋)옹방강에게서나온것이다.옹방강에게들었던말을곁들여묵연(墨緣)을표한다.
22)과천시ㆍ한국미술연구소편,『추사글씨탁본전』,2004,76~77쪽.
23)유홍준,『완당평전』2,학고재,2002,450~452쪽.
2016 50호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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