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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찌통감의 지시사항 이라든지 제국이 바라는 것이라든지 하는 것이
만약의 문제에 대해 협력을 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일본이 시키는 대로 무
엇이든 충성을 다해온 완용의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고 내각을
해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완용은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온양을 떠나지 않고 버티며 기다리고 있는 오꾸라 비서관을
불러
기왕 이렇게 된 것 내가 어쩔 수 있겠오
하고는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완용 총리대신이 한국 경찰권을 일본 통감부에 위탁하는데 동의함으로
써 이튿날 긴급 소집된 각의는 더 이상 반대를 못하고 위탁각서에 조인할 것
을 결정 한국의 경찰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월 일 오후 시 한국 경찰권 위탁조인이 이루어져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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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완용을 규탄하는 의분의 소리가 높아지고 세상이 다시 소란해지자 완
용은 온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모두들 이완용이 온양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무슨 변을 당할지 두려
웠던 것이다 완용이 온양을 떠나 서울로 간 후 불과 개월도 못돼 그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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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저 엄청난 민족의 굴욕 한일합방서에 조인을 했다
어느 시대고 그 질과 방법이 다를망정 뇌물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중앙의 고위층에게 뇌물을 받치는 기회는 그
고위층이 지방에 나왔을 때가 좋은 기회로 이용된다.
따라서 충남의 온양이나 유성은 일제의 가장 좋은 뇌물전달 장소로 이용되
었다 제 대 조선총독으로 우라끼라는 자가
년 월부임 이듬해 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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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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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 농촌시찰을 한다고 전국을 순회했다.
우가끼총독은 때마침 일본의 만주침략이 한창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한반
도를 그들의 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조직적인 농촌진흥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을 순회한 것이다 실상 우가끼 총독이 내세운 농촌운동이란 지
하자원의 개발 쌀증산 솜생산 등 그들의 병참자원 활보를 위한 정책이었
온양온천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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