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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수품이었던 놋그릇 화로 교량난간의 쇠붙이 등은 모조리 거두어들여져 전
쟁에 동원되었다.
5.
조국광복과 온양
광복의 기쁨을 맞는 아산군은 당시 군수인 조선인 정홍섭을 중심으로 시국수습 대책을 위한 회의들을
빈번하게 열고 주민들에게는 부화뇌동 하지말고 냉철한 이성으로 질서유지를 당부하는 등 사회 혼란
방지에 나음대로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무렵 온양 경찰서에서는 아무런 소요도 없었으며 대신 가끔씩 무엇을 소각하는지 모르나 경찰서
뒷마당에서 문서를 태우는 듯한 연기가 솟아오르곤 하였다.
그리고 온양읍 실옥리에 있었던 육군병원 온양 분원에는 당시 약
50
여 명의 소대 병력이 주재하고
있었으며 재향군인들이 각 기관에 약 천 명씩 있었고 시내에도 수천 명이 있었던 바 이들의 동태 또한
별 움직임이 없었다 육군병원에 소속된 조선인 지원 병사들에게는 병원장이 말하길
, ‘
당신들의 나라가
독립이 되었으니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 고 하여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내기도 하였다
한편 이영진 이성규 박명진 등이 주동이 되어 아산군청에다 치안유지회 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회
혼란을 방지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들의 활동과 관련된 온양에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일부 지역 유지들이 중심이 되어 수습대책을 논의하여 자치회를 조직 자치회 탄생보고 및 조선독립
경축식을 온양극장에서 개최함.
온양읍 자치회 온양읍사무소내 설치 에 육군병원 일본군들이 습격하여 숙직원을 구타하고 자치회 명
단과 선전물 등을 파손하고 온양 자치회가 사용하는 목총을 육군병원으로 반납하라는 행패를 부림.
아산군 자치회에서는 다음 날 온양 자치회의 일본군 난동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고 온양읍 자
치회 간부들이 당시 하라다 원전 온양 경찰서장을 방문하여 엄중 항의함 이어서 자치회 간부들
은 경찰서장과 일본인 육군병원장 일본 육군 소위 과의 연석회의를 열고 상호간의 의견을 교환함
이 때의 회의 내용으로 자치회 측은 일본군의 만행을 즉각 중지하도록 요청하였고 일본측은 담배
배급을 요청하였고 육군병원 병원장은 이 자리에서 저희들이 알기에는 조선 내에서 아산지방이 가
장 강경한 자세로 일본인들에게 도전을 하고 있고 조선의 독립을 경축하는 도가 지나칠 정도이니
좀 누그려 달라 서울도 아산에 비교가 안될 만큼 조용한 편이다 그러니 자치회가 나서서 지금의
공포분위기를 달래 주기를 바란다 라고 간청하였음
?????
이 무렵 일본군에 징집되었던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당시 치안 유지회 소속아래 기동대를
조직하여 지역 질서유지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자 아산군 선장면을 중심으로 하는 몇 몇 지방
의 좌익진영이 합세하여 치안 유지회 기동대의 본부를 습격하여 이들을 강제로 해산하도록 하였다.
기세를 얻은 좌익 진영은 온양 경찰서마저 접수하고 아산 군청에 인민위원회를 설치해서 우익 진영
의 모든 집회를 폭력과 난동으로 방해하는 한편 아산지방의 치안을 담당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좌
익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
이에 우익 진영의 인사들은 온양읍 사무소에 후일의 독립촉성회의 모태가 되는 우익진영 단체를
조직한 후 홍순철을 회장으로 선출하여 기동대를 재조직하기에 이른다
재조직된 우익 진영의 기동대는 온양 경찰서를 습격하여 재접수 하는데 성공하니 기세가 눌린 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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