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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되었다. 1867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자 1870년에 고택 옆에 세덕사(世德
祠)를 마련하고 아버지 맹유, 아들 맹사성(思誠)과 함께 불천지위로 위패를 모셔서 지금에 이르고 있
다. 300여년이 지난 1750년(영조26)에 영조가 온양온천에 행행하였을 때 예관을 보내 치제(致祭)하
고‘충효세업 청백가성(忠孝世業 淸白家聲)’
이라는 어필 현판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 고불 맹사성(孟思誠)을 비롯하여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였고 아산시의 거의 전지역은 물
론 전국적으로 많은 곳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맹희도의 묘와 세덕사-
[40] 여흥민씨 민탁
| 閔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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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여흥민씨(驪興閔氏) 15세이며 청백리공파 아산시 지역, 염치읍 백암
리 구무골 입향조이다. 선대는 주로 서울에 거주하였고 선영은 경기도 여주에 있었다. 현재 온천동에
거주하는 후손 30세(世) 민병권(閔丙權, 67세)씨의 15대조이다.
그는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문도공(文度公) 민변(閔 )의 5세손이다.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를 낳
은 여흥부원군 민제(閔霽)의 아우이자 문과급제 후 대사헌과 관찰사 등을 역임한 민개(閔開,
1360~1396)의 현손이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경상감사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청백리에
오른 민불탐(閔不貪)의 증손이고 대사헌과 관찰사를 지낸 장절공(章節公) 민건(閔騫, ?~1460)의 손
자이다. 아버지는 직산현감을 지낸 민경달(閔敬達)이고 어머니는 이씨(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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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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