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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비롯한 200여 명의 주민은 따로 대호지면사무소 광장에 집결하였다. 그리고 이인정


면장과남주원등의지휘아래만세운동의발대식을가졌다.61세의노(老)면장인이인정



은 말을 타고 태극기를 앞세우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대가 장정리 앞 도로에 이르자,


기다리던유동렬지사는제자와주민을이끌고시위대에합류하였다.가슴이뜨겁게벅차


오르는감격의순간이었다.





시위대가 천의 장터에 도착하고 중앙에 태극기를 게양하자 군중은 1,000여 명으로 늘
었다.이때천의장터를감시하던일본경찰들이태극기를빼앗고만세운동을억압하려하
였다.하지만시위대는이들을제압하고시위대에강제로합류시켰다.독립선언식은엄숙
히진행되었고,뒤이어연호하는“독립만세”의함성이천지를진동하였다.일제는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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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있던당진경찰서소속무장경관2명을천의리에급파하였다.이들은시위대를억압하
면서 대형 태극기를 탈취하고자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군중과 분쟁이 일어났다. 일제
경관은 군중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였고, 크게 분노한 주민들은 돌을 던져 경찰을 물리쳤
고,경찰관주재소에돌진하여각종기물을파괴하였다치열한시위는날이저물면서종료
되었고,해방을만끽한주민들은흥분을억누르며귀가하였다.뒤이어천의장터에도착한
홍성수비대는대호지면으로향했고아비규환의상황속에서주도인사체포에혈안이되
었다.하지만,주민들은수비대의탄압에맞서4월8일봉화시위를전개하였다.대호지면
조금리와송전리에서타오르는봉화는정미면수당리안국산봉수로연결되었다.이봉수
는조선시대해미현의대표봉수로서울로올라가는통신로였다.봉화시위는치열하면서
도 의연하게 진행되었고 봉화대에 불을 지펴 올림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만세
운동이결과,200여명의주민이체포되었고현장순국한분이1명,옥중순국3명,징역형
을선고받고옥고를치른분이39명,태형90도를받은분이88명에이른다.현재독립유
공사실이확인되어서훈받은분만150여분에달한다.벽지중의벽지인대호지면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가장낮은단계민중의항일정신을극명하게보여준식민시대대표적인
항일운동이었다.그한가운데유동렬애국지사가있었다.
만세운동이 끝난 뒤, 장정리에도 홍성수비대와 일본 경찰은 들이닥쳤다. 유동렬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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