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83페이지

385페이지 본문시작

갔는데 증기기관차는 한 20편 정도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에 증기기관차가 없어지
고 급수탑도 사라졌다. 디젤 기관차 시대로 바뀐 것이었다. 그때 가장 고급 기차는 새마
을호였다. 그 다음 특급열차로 경부선에는 통일호, 호남선에는 백마호, 여수행 전라선은
풍년호라고 불렀다. 그러나 대부분은 완행열차였다. 대전에서 군산까지만 운행하는 미
군전용기차가있었는데RTO라고불렀다.
그때 기차표는 대략 100원으로 대전에서 강경까지 통학하는 사람, 논산과 연산에서
강경으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기차를 이용하였고 인원도 무척 많았다. 처음 기차표를
팔았을 때 70년대에 서울까지 통일호 요금이 850원, 입석은 750원이었고, 완행인 비둘
기호는 용산까지밖에 가지 않았는데 410원이었다. 강경은 그래도 큰 도시라 모든 열차
가 다 정차했다. 강경역은 직원이 30명 정도이고 레일 수리공까지 포함해서 강경역에서
먹고사는 사람이 대략 200명 가까이 되었었다. 통운에 30명 정도, 선로 고치는 보선반
이 한 20명이 있었다. 또 객화차라고 입대하는 군인들을 태우는 기차가 있는데, 객차가
한 60량 정도 되었다. 이 차는 부산 등 전국을 다 다니면서 입대 군인을 수송했다. 칸칸
마다역직원들이타기때문에대략70~80명있었고전기부서까지있었다.
그가강경역에서주로한일은기차표매표였다.평균적으로하루에1,200에서1,300
명 정도가 출입했다. 그때는 논산역보다 강경역이 규모가 더 컸다. 80년도까지 논산역
의집계현황을강경역으로보고하고총합집계결과를대전으로보고했다.명절때였는
데 76년인가 77년인가 하루에 팔백만 원을 올렸다. 당시 귀성객들은 대개 기차를 이용
했다. 그 덕에 강경역이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각 역마다 최고 수입 예산이 있는데 그것
을 뛰어넘었다. 논산역은 당시 600만 원, 강경역은 800만 원으로 1등을 하였다. 그 날
은 명절 때라 강경역에 임시열차가 배치되었다. 게다가 관례상 어느 역에는 얼마만 팔라
고 배당이 내려왔다. 그런데 10년간 표를 팔아 본 경험으로 스스로 판단해서 표를 무제
한으로 팔아버렸다. 강경역 플랫폼에 기다리는 사람이 꽉 차는 일이 일어났다. 역장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임시열차가 들어와서 그 많은 승객을 다
태우고 갔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명절 때는 으레 임시열차가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논산시 383

38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