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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군대도형님이름으로입대하게되었다.지금도여전히형님의이름으로살고있다.





가정의고난은여전했다.큰형님은유영래(劉永來)인데,1942년일제에의해강제징병


되었다. 그리고 필리핀 제14방면군 제35군 제30사단 제77연대에서 복무하던 중 1945년


7월1일필리핀레이테섬에서사망하고말았다.유승웅님이실제로태어나기1년전이다.


광복을한달여남기고큰형님은돌아가시고만것이다.집안의큰기둥하나가무너졌다.



어머니말씀에의하면,부친은대단히학식이깊었다고한다.부친은해미보통학교를졸
업한뒤해미면사무소에도근무하였고,대서소를운영하면서주민의소송관련대필을많
이 해주었다고 한다. 부친이 쓰셨다고 전하는 족보와 관련 문건을 본 적이 있는데 붓글씨
가 보통 수준을 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학식이 깊었던 부친도 1950년 한국전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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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가지 못했다. 시골로 확대된 한국전쟁은 민간인 학살로 자행되었고, 무고한 양민의
무수한 희생을 낳았다. 부친은 이 과정에서 좌익으로 몰렸고 우익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
했다. 일제강점기 노무자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둘째 형님과 함께였다. 하늘이 무너졌다.
어린시절유승웅님은부친의사망원인을어머니께여쭈어본일이있었다.어머니말씀은
한마디였다.“똑똑하셨기때문이다.”라고.
집안의액운은끝나지않았다.이번에는셋째형님이전사하셨다.이형님은한국전쟁기
에경기도연천광진지구전투에서참여하였다가전사하고말았다.황망했다.넷째형님은
동두천헌병대에근무하던중트럭에모래를싣고나오다가트럭이전복되는사고를당했
다.형님도이사고로끝내사망하였다.다섯째형님도서산에서뺑소니차량에의해교통
사고를당해사망에이르고말았다.어떻게살아가야하는가.유승웅님은홀로남은어머
니를봉양하면서젊은시절을해미면조산리238번지에서지냈다.슬픔이가슴가득차올
랐지만,열심히농사를지었다.1960년대4-H운동에참여하면서농업기술개선과근검절
약의 정신도 익혀나갔다. 하지만 20대에 접어든 유승웅 님은 군에 입대해야 했고, 어머니
도돌아가시면서해미와의인연도점차멀어지게되었다.
군생활은유승웅님께새로운희망을주었다.때로는부친의사망과관련한신원문제
로남모를어려움을겪었지만,유승웅님은장기하사에지원하였고주어진책무를성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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