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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각 부분을 병합하여 선장과 창리의 이름을 따서 신창리라 하여 아산군 선장면에 편입되
었다. 연동은 신창군 대서면의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창리로 병합되
면서 아산군 선장면에 편입되었다. 편입된 후, 지형적인 문제로 두 마을로 나뉘어, 좀 외딴
곳에 있는 이 마을을 2구로 정하고 연동이라 불렀다. 1914년에 선창리로 병합된 후 두 마을
로 나뉘었었는데, 큰선장쪽을 다시 두 개의 마을로 분리했다. 그래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3구인 토막사로 부르게 되었다. 토막사는 6.25때 피난민들이 들어와 사는 바람에 새로운 마
을로 불리게 된것 이다. 창골마을은 선장면 선창2리에서 80년도 선창 4리로 행정구역이 분
리되었다.
5)
입 향
큰 선장에는 구터라는 마을이 있는데 옛날 이곳에 판서를 지낸 서씨의 묘를 만들었다. 옛날
3정승 6판서 하면 대단한 권력가였기 때문에 이곳에 묘를 쓴다며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모
두 이주시켰다. 아직도 그 묘가 남아 있으며 그의 후손이 이곳에서 5대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 세대도 살고 있지 않다. 연동마을은 김씨가 처음 터를 잡았으며 제일 많
은 세대가 살고 있고, 그 후로 권씨와 오씨, 이씨와 박씨가 들어왔다. 박씨는 큰선장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라 한다. 이런 성씨들 외에 기타 성씨들도 한,두세대씩 살고
있다. 토막사 마을엔 원래 큰 선장과 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박씨가 처음 터를 잡아 살았으
며 6.25때 피난민들이 들어오면서 각기 다른 성씨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이씨가 많이 들어
와 지금까지도 11세대로 가장 많다.
6)
지 명
선장
{큰선장} : 선장리에서 가장 으뜸가는 마을 상고때부터 시장이 4, 9일로 섰었는데 1917
년에 시장을 군덕리로 옮긴후로 큰 선 장이라 함.
연동
{떼장거리} : 선장 남동쪽에 있는 마을 권씨가 살면서 마을 앞에 못을 파고 연을 심었
음. 또 떼를 가지고 지붕을 해 이었다하여 떼장거리라 불리기도 함. 학선 초등 학교가 있음.
골 : 선장 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창고가 잇었음.
서편말
: 선장 서쪽에 있는 마을.
구롱재
: 대텃골 옆에 있는 골짜기. 옛 기와조각이 많음.
터 : 선장 서쪽에 있는 골짜기.
대텃골
: 군터 서쪽에 있는 골짜기.
선창리
절터 : 선창리 야산 경사면에 있다.
방죽골
: 선장 동쪽에 있는 마을. 앞에 저수하는 논이 있음.
가장골
: 선장 남쪽에 있는 마을.
동편말
: 선장 동쪽에 있는 마을.
까치물
: 선장 남쪽에 있는 마을. 옛날 창고가 있었음.
7)
전 설
이 마을에서 특별히 소개 할 만한 전설은 조사 되지 않았다.
8)
전통놀이 및 대표적 집단 행사
우친계
·7월 7일 마을 안녕을 비는 제를 지낸다.
9)
특별하게 소개할만한 인물
김용기
공적비(학선초등학교 부지희사) : 1979. 4. 10
1971년 김용기씨는 토지 4000여평을 희사하여 학성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산간 5개여 부락
어린이들의 배움의 터전이 되게 하였다.
10)
종교 단체
기독교 연동장로교회
11)
공장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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