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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자를 짖고 공북
이라 편액
하고는 그 기문을 요구해 왔으니 그대의 말이 있
기를 바란다
하였다 내 추억하건대 병자년 여름에 서원
의 공성
으로부터 이른
바 신창이란 땅으로 길을 들어 지나는데 나의 동년
인 태수 김율
이 길로 나와서
나를 맞아 주었다 때는 바야흐로 혹열
이었는지라 잠간 나무 그늘에 앉아 술잔을 나
누면서 이내 그 고을의 대략 형편을 물었더니 김이 말하기를
이 고을 이 지역이 좁고 백
성도 적으며 토질이 박하고 산물이 적은데다가 아전들은 교활 완만하고 백성 역시 시끄럽
고 또 송사를 좋아하는데 반하여 나는 서리고 얼킨 것을 다스리어 부석
변별할 만한
재간이 없어 다만 요동하지 않도록 할 따름이요 너그럽게 대할 따름이다
한다 나는 말
하기를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작은 고을을 다스리려면 생선을 삶을 때와 같이 하라
하였
. "
으니 군의 고을 다스리는 방법이 거의 그 대체
를 얻은 것이다 군의 뒤를 이어 오는
5l
자로 하여금 군의 마을을 마음으로 가혹하고 군의 정사를 그대로 실행한다면 어찌 다스려
지지 않을 이치가 있겠는가 하고 나의 노정
의 급박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거기서 고
."
별하고 가버렸던 것이다 그 후 몇 해 만에 다시 호남 지방으로 가는데 또 이길로 지났더
니 태수 윤호
공이 길에 나와서 나를 맞아주고 술잔을 들었는데 내가 그 고을 다스
리는 법을 물었더니 그의 대답이 나의 동년 김군와 같았다 또 나의 갈길이 바쁘고 역방
할 겨를을 얻지 못하여 마음속으로 그윽히 괴이하게 여기기를 거정이 이 읍과는 본
래의 인연이 없어 그런 것인가 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들으니 조후
가 고을을 다스리
는데 부지런하고도 민첩하며 간소하게 하면서 요령이 있어 그 명령을 번다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업
에 충실하고 백성들에게 빨리 하지 말라 하여도 그들은
즐겨 그 일에 달려와서 관청과 정자가 환연
하게 일신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
을 생각하고 그 정사를 사모하나 친히 그 읍의 상황을 보지 못하였은즉 김동년
사문
윤호 과 더불어 일찌기 서로 토론한 말들이 나의 흉중을 왕래하지 않을 수 없
는 것이다 이제 조후가 정자를 짓고 무송 윤공의 기문의 부탁이 홀로 나에게 지워지니 이
는 전일 나에게 두 차례에 걸친 기망
이 오늘을 기다린 것이다 감히 즐겨 말하지 않
으리요 나는 생각하기를 누대나 정자를 세우는 것이란 완상
하며 놀기를 일삼으려는
것이 아니요 곧 왕명을 받들고 온 이를 존경하고 빈객을 잘 접대하며 울적한 것을 이끌어
풀어버리기 위한 것인데
공북
이라 이름한다면 다만 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여기
에서 조망
해 내다보고 여기서 술마시며 글 읊는 사람들로 하여금 멀리 궁궐문을 바
라보고 하늘 아래의 장안
서울 을 가리키며 일찌기 한 그릇의 밥이라 할지라도 임금
의 은혜임을 잊지 않게 한다면 춘추
의 왕실
을 존중한 큰 의리를 깊이 얻는 것
이 될 것이다 대개 춘추는 선
을 높이 선양해 권장하고 악
을 깎아내려 징계한 책으
로 왕실을 존중한 자 있으면 이를 썼고 백성의 일을 소중히 한 자 있으면 이를 썼던 것이
다 조후의 이번 일은 공역에 있어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으며 시세
로 보아서도
ł"
과잉한 거조가 아니었고 왕실을 존중함이 이와 같으니 춘추의 전례에 있어서도 오히려 대
서특서
하여 이를 찬미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요 나같은 사람은 사국
의 문한
5t
의 직임을 맡고 있는 터이니 비록 쓰려고 하지 않은들 어찌 면하겠는가 그 산천과
"
읍터의 형승
에 있어서는 내 일찌기 한 번도 목격한 일이 없으니 어찌 장황하게 늘어
놓으랴 나의 박전
백마지기 이 평택
땅에 있는데 다른 날 혹 은퇴를 원
하여 그 곳에 돌아가서 휴양한다면 마땅히 한 번 그 정자 위에 가서 보고 그 말을 다하겠
노라
학교
향교
본현 북쪽
2
역원
창덕역
본현 동쪽
본현 동쪽
리 지
3
11
점에 있다 마장원
본현 동쪽
리 지점에 있다 용정원
본현 남쪽
15
7
15
리 지점에 있다 신례원
본현 서쪽
리 지점에 있다
20
교량
미륵탄교
마장원 동쪽에 있다
7
불우
한량사
천일암
도명사
원암
석천사
불암
#æ2
02
안심사
모두 도고산에 있다
사묘
사직단
본현 서쪽에 있다 문묘
향교에 있다 성황사
본현 서쪽
2
있다 여단
본현 북쪽에 있다
고적
성산성
석축으로 둘레가
척에 높이는
척이며 그 안에 두개
1
2
13
15
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은 폐해 버렸다
인물
본조
맹희도
고려 공민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본조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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