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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 번 돌리고 또 올려주고 돌리고 하면서 짜야했다. 그 당시 수직 기계로는 번 돈이
지금으로치면하루에몇만원정도였다.
1976년북옥동옛날고아원자리에서김부천이라는사람이기계로짜는양말공장을
하였는데 그 공장을 인수받았다. 돈이 많이 들어갔지만 갖고 있던 논 열일곱 마지기는
팔지않았다.논값이한마지기에쌀여섯가마,일곱가마할정도로무척쌌고또농사
지어야 별 수입이 없다고 하여 사는 사람도 없었다. 돈이 모자라서 농협에서 대출도 받
았다. 수직 기계 3대로 양말을 짜다가 이제 자동 양말 기계 8대 갖고 본격적인 양말 공
장을 시작하였다. 자동 기계는 전기 스위치를 넣으면 모터로 피대가 돌아가서 착착 양말
을 짜 주었다. 먼저 고무줄을 넣고 양말을 짜고 발뒤꿈치도 자동으로 짰다. 기계 보는 기
사에다가 옆에서 도와주는 일꾼 하나 붙여 주었다. 그리고 물건을 많이 생산할 때는 실
감는 사람, 양말 짜는 사람, 양말을 꿰매는 사람, 양말을 다려서 포장하는 사람 등 한
20명이 일을 했다. 원료인 나일론 실은 서울에서 사 가지고 왔다. 실을 사오면 해사공이
실을풀고다시감아서기계에다넣으면‘착착착’하며기계가돌아가양말을짰다.
양말이 완성되면 잘 다려서 상표를 붙이고 포장을 해 ‘신창양말’이라는 상표를 달고
전주, 목포, 여수, 홍성, 광천, 서산 그리고 서울로도 팔려 나갔다. 양말을 납품할 때는
주로 열차 소화물을 이용하였다. 역까지는 자전거 짐차에 실어서 보냈는데 직접 싣고도
가고일꾼을보내기도했다.
강경역 수화물계에서 물건 중량을 달아 요금을 받았다. 강경역에는 수화물계 옆에 리
어카꾼이 한 20명 있어서 그 사람들이 물표를 보고 목포행이면 목포행 홈에다 갖다 내
놓아 기차에 실었다. 당시 수화물 가격은 무척 쌌다. 목포에 큰 덩어리 한 짝 보내면 한
4,000~5,000원정도했다.또물건이도착하면수화물을리어카에실어서집에까지배
달해 주었다. 몇천 원 정도 주었는데 그 사람들 덕분에 참 편하게 장사했다. 지금은 늙어
서다돌아가셨다.
양말 장사가 강경에 와서 사 가지고 가는 양도 엄청나게 많았다. 양말을 몇백만 원어
치 사 가지고 가면 일주일도 안 돼서 다 팔고 또 사러 왔다. 그래서 강경장날이면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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