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倜)의 증손이다. 진사 남침(南
)의 손자이며 청계처사(淸溪處士) 남규(南
)의 아들이다. 부인은 경
주이씨로 참군 이파(李播)의 딸이다.
그는 진사시 초시에 합격했지만 그의 6촌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의
영향으로 세상을 등지고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의 아들로 충의(忠義)에 빛
나는 국걸(國傑), 국신(國信) 등이 있다. 묘는 신창 남면 태산(台山), 현재의 도고면 시전3리 의령남씨
종산에 있다.
-남확의 묘-
[38] 교하노씨 노응수
| 盧應洙
<1853년(철종4년)~1905년(광무9년)>
조선 말기의 인물로 교하노씨(交河盧氏) 28세(世)이며 서암공파(西菴公派) 아산시 지역, 선장면 대
흥리 입향조이다. 현재 용화동에 거주하는 노정우(盧貞愚, 86세)씨의 조부이다. 선대는 오랜 동안 청
주 지역에 거주하였다. 고조는 노익중(盧益中), 증조는 노가현(盧可賢), 조부는 노면집(盧勉集)이다.
아버지는 노상후(盧尙厚)이며 어머니는 옥천육씨(沃川陸氏)이다.
노응수의 호는 해암(海岩)이며 부인은 천안전씨(天安全氏) 전정복(全正福)의 딸이다. 그가 언제 왜
선장면으로 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혼인으로 인해 아산시 지역과 인연을 맺었고 갯벌을 간척한
농토를 확보하기 위해 선장 지역으로 와서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약 130년 전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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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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