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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그의문인이었으니,이때부터문체가크게변할수있었다.
이기록으로보아이달을비롯한3당시인들은박순의문인들이
었다.박순은선조임금이즉위한이후,한때정계와문단을주도한
인물로서3당시인을후원하였다.1579년에백광훈이정릉참봉으
로있었는데,1580년에그의글솜씨를아껴서예빈시참봉겸주
자소도감감조관으로옮겨주었다.그뒤로3당시인들은정릉과봉
은사일대에서자주만나시를짓고시사(詩社)를결성하였다.
박순과최경창과백광훈은고향이호남이고이달의고향은호서
이다.아마도이들모두호남과호서지역출신으로서,옛백제가지
배했던동향이라는지연도작용했으리라는생각이든다.
그러나이때이달은박순으로부터충격적인가르침을받고원주
손곡으로돌아갔다.박순이말하기를,
“시의도는마땅히당(唐)으로써으뜸을삼아야한다네.소동파가
비록호방하기는하지만,벌써이류로떨어진것일세.”
박순은진지하게말하면서책시렁위에꽂힌책들을뽑아주었다.
그책들은이태백의악부(樂府)·가(歌)·음(吟) 등과왕유·맹호연의근
체시등이었다.
이달은 깜짝 놀라서 시의 바른 법도가 여기에 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그는앞서배웠던것들을모두내버리고,옛날에은거했
던손곡의집으로돌아왔다.
이달은 손곡의 옛집에 틀어박힌 채,『문선(文選)』과『이태백집』과
성당 십이가(十二家)의 글, 유우석, 위응물 및 양백겸의『당음(唐音)』등
을 가져다가 엎드려서 외웠다. 밤을 낮삼아 앉은자리에서 떠나지
않기를5년동안이나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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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이낳은비운의방랑시인손곡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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