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10페이지

37페이지 본문시작

곧 중종이다. 이 때 자암 김구는 19세의 나이로 시대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에 참여하고자 다음 해에 소과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한
것이다.
중종은 즉위하여 연산군의 악정으로 흐트러진 기강을 세우고 새로운 정치로
백성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에 젊은 유신 조광조를 발탁하였고 조광조를 중심
으로 유생들을 대거 등용한 후, 훈구세력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조광조는 유
교로서 정치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에 입각하여 왕도정치를 실현하
고자하였다.
이러한 도학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개혁을 시도해야만 이루어진다
는 사실에 입각하여 첫째로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꾸기 위해 소격서를
혁파하였고, 둘째, 과거제도인 현량과를 실시하여 소장학파를 등용한 후 요직
에 안배하였다. 셋째, 중종반정으로 인한 정국공신이 많음을 비판하면서 공신
3/4에해당하는76명의훈작을삭탈하고넷째,군현에있는유향소를축소하고
사림이주역이되어여씨향약을보급하였다.
이에 훈구파 홍경주, 남곤, 심정 등이 비밀리에 중종을 만나 신진 세력파 조
광조 등을 탄핵하기 시작하였다. 중종 역시 개혁으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생활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하였으나 유림들의 급진 개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때였
기에 훈구파들의 탄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홍경주는 딸인 희빈 홍씨를
시켜 나뭇잎에‘주초위왕(走肖爲王)’을 벌꿀로 써 벌레가 파먹게 한 후 이것을
중종에게 바쳐 조(趙. 走+肖)씨가 왕이 된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고 홍
경주는 위훈삭제를 개정하는 척 하면서 훈구파들과 규합하여 1519년(중종 14)
에 기묘사화를 일으켰다. 이로 말미암아 조광조의 왕도정치 실현은 물거품이
되고 이에 가담한 신진세력들은 대거 숙청당하게 되는데 이때 숙청된 인물들을
기묘명현이라 한다. 기묘명현록에 기록된 인물은 모두 247명으로 나타나고 있
다.기묘명현록은1565년(명종20)을축년에중종후손이중균이서문을썼다.
아래는《기묘명현록》에기록된자암김구의내용이다.
김구 자는 대유, 호는 자암, 광산인이다. 정유년(중종 2, 1507년)에 생원진
사시에 장원급제하고 계유년(중종 8, 1513년)에 급제하였다. 부제학으로 있을
때 기묘사화를 당하여 충암(김정), 정암(조광조)과 같이 하옥되었다가 곤장을
맞고 개령으로 부처되었다. 다시 12월에 남해로 유배되었다. 죽림 속에 있는
집에서 적거생활을 하다가 신묘년(중종 26, 1531년) 11월에 임피로 유배지를
36│묵향의본향에서조선4대명필자암김구를만나다

37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