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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이며, 내포(內浦)를 대표하는 명산이다. 『택리지』의 저자
니라, 추사의 창의적 추사체와 충의사의 윤봉길의사의 충의정
이중환은 가야산의 앞 뒤 10개 고을을 내포라고 한다고 했다.
신을 오버랩 되게 하는 예산의 명소들이다.
따라서 가야산은 내포의 중심 산이 된다.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
그리고 임존성은 660년 백제의 멸망에 항거하여 흑치상지를
시 운산면 · 해미면에 걸쳐 있는 가야산은 덕숭산과 함께 도립
중심으로 일어났던 최초의 백제부흥운동의 현장이다. 1356년의
공원(1973년)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무너져서 자취를 찾을 수
장구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며 불의의 침략에 굴복할 수 없었
없지만 원래 가야산의 가야사(伽倻寺)는 백제사찰로 출발했고,
던 백제시대 예산인들의 충의의 구국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
수덕사
예산황새
통일신라시대에는 나라의 제사를 드리는 중사(中祀)의 현장이
예산10경에서 예산의 은 황새 공원, 예
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덕산현감이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던 국
산 사과, 덕산 온천 등으로 대표된다. 예산의 청정한 자연과 풍
가제사의 현장이었다. 또한 가야사는 민중적 저항의 역사가 배
요한 명물을 잘 보여준다. 황새 공원은 2009년 문화재청이 공
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1176년 고려 무신정권기에 집권 무신들
모한 ‘황새마을 조성사업’에 예산군이 응모하여 국비 190억원
의 탐학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공주 명학소(지금의 대전광역
을 들여 조성한 것이다. 총 4만1천여 평의 공원에는 황새문화
시 서구 탄방동 소재)의 천민들(망이 망소이 등)이 거사하였는
관, 사육장, 오픈장, 생태습지 등이 조성된 아름답고 청정한 자
추사고택
예산사과
데, 이들은 수도 개성을 향해 쳐들어가던 중 이곳 예산 일원과
연생태공원이다.
가야사를 점령하고 죽음으로써 저항하였다. 후일 가야사는 남
‘예산 사과’는 사과나무에 매달린 탐스럽게 잘 익은 붉은 사
연군(대원군의 아버지)의 묘소를 조성하기 위해 강제로 해체되
과의 모습이다. 사과만으로는 풍경이 될 수 없겠으나 사과밭에
었지만, 그 역사와 정신적 전통을 생각해 보면 오늘에 다시 복원
열려있는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는 그 또한 한 폭의 그림이 되니
시킬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 사찰이다. 또한 예당저수
풍경이 못 될 것도 없다. 예산은 풍부한 일조량, 비옥한 황토, 그
지와 삽교평야는 예산의 풍부한 수자원과 너른 들의 풍요를 상
리고 예당호수의 수자원이 고루 갖추어져 중부권 최대의 사과
덕산온천
충의사
징하는 명소이고, 동시에 자연을 개척해 간 예산인들의 개척정
산지를 이루고 있다. 9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예산 사과는
신이 배어있는 현장이기도 한 곳이다.
그 맛과 멋으로 예산을 대표하고 있다.
예산10경에서 예산의 은 수덕사, 추
끝으로 덕산 온천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수록된 600년 역
사고택, 충의사, 임존성으로 대표된다. 예산 수덕사는 백제시대
사의 온천이다. 일찍이 율곡은 그가 지은 글에서 ‘날개와 다리를
부터 있어왔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인데, 특히 1308년에
다친 학 한 마리가 논에서 여러 차례 물을 찍어 바르며 며칠을 치
건립된 대웅전은 당대의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독보적 문
료하다가 하늘로 날았는데,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따뜻하고 매
화유산이다. 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덕사 대웅전은 그
끄러운 물이 솟아났다.’는 전설을 소개한 바 있다. 천연기념물 황
임존성
제작연도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예산의 역
새의 서식지가 되고, 학을 살린 온천수가 솟아 나오고, 생기 넘치
사와 불교전통의 실제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는 붉은 사과가 자연의 풍요를 공감하게 하는 곳, 예산의 청정한
또한 추사고택과 충의사는 그 자연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
자연과 풍요한 명물을 감상케 하는 예산의 명소가 아닐 수 없다.
1.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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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내포의뿌리예산학
니라, 추사의 창의적 추사체와 충의사의 윤봉길의사의 충의정
이중환은 가야산의 앞 뒤 10개 고을을 내포라고 한다고 했다.
신을 오버랩 되게 하는 예산의 명소들이다.
따라서 가야산은 내포의 중심 산이 된다.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
그리고 임존성은 660년 백제의 멸망에 항거하여 흑치상지를
시 운산면 · 해미면에 걸쳐 있는 가야산은 덕숭산과 함께 도립
중심으로 일어났던 최초의 백제부흥운동의 현장이다. 1356년의
공원(1973년)을 이루고 있다. 지금은 무너져서 자취를 찾을 수
장구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며 불의의 침략에 굴복할 수 없었
없지만 원래 가야산의 가야사(伽倻寺)는 백제사찰로 출발했고,
던 백제시대 예산인들의 충의의 구국정신을 잘 담아내고 있다.
수덕사
예산황새
통일신라시대에는 나라의 제사를 드리는 중사(中祀)의 현장이
예산10경에서 예산의 은 황새 공원, 예
었으며, 조선시대에도 덕산현감이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던 국
산 사과, 덕산 온천 등으로 대표된다. 예산의 청정한 자연과 풍
가제사의 현장이었다. 또한 가야사는 민중적 저항의 역사가 배
요한 명물을 잘 보여준다. 황새 공원은 2009년 문화재청이 공
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1176년 고려 무신정권기에 집권 무신들
모한 ‘황새마을 조성사업’에 예산군이 응모하여 국비 190억원
의 탐학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공주 명학소(지금의 대전광역
을 들여 조성한 것이다. 총 4만1천여 평의 공원에는 황새문화
시 서구 탄방동 소재)의 천민들(망이 망소이 등)이 거사하였는
관, 사육장, 오픈장, 생태습지 등이 조성된 아름답고 청정한 자
추사고택
예산사과
데, 이들은 수도 개성을 향해 쳐들어가던 중 이곳 예산 일원과
연생태공원이다.
가야사를 점령하고 죽음으로써 저항하였다. 후일 가야사는 남
‘예산 사과’는 사과나무에 매달린 탐스럽게 잘 익은 붉은 사
연군(대원군의 아버지)의 묘소를 조성하기 위해 강제로 해체되
과의 모습이다. 사과만으로는 풍경이 될 수 없겠으나 사과밭에
었지만, 그 역사와 정신적 전통을 생각해 보면 오늘에 다시 복원
열려있는 탐스럽게 잘 익은 사과는 그 또한 한 폭의 그림이 되니
시킬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 사찰이다. 또한 예당저수
풍경이 못 될 것도 없다. 예산은 풍부한 일조량, 비옥한 황토, 그
지와 삽교평야는 예산의 풍부한 수자원과 너른 들의 풍요를 상
리고 예당호수의 수자원이 고루 갖추어져 중부권 최대의 사과
덕산온천
충의사
징하는 명소이고, 동시에 자연을 개척해 간 예산인들의 개척정
산지를 이루고 있다. 9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예산 사과는
신이 배어있는 현장이기도 한 곳이다.
그 맛과 멋으로 예산을 대표하고 있다.
예산10경에서 예산의 은 수덕사, 추
끝으로 덕산 온천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수록된 600년 역
사고택, 충의사, 임존성으로 대표된다. 예산 수덕사는 백제시대
사의 온천이다. 일찍이 율곡은 그가 지은 글에서 ‘날개와 다리를
부터 있어왔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찰인데, 특히 1308년에
다친 학 한 마리가 논에서 여러 차례 물을 찍어 바르며 며칠을 치
건립된 대웅전은 당대의 목조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독보적 문
료하다가 하늘로 날았는데,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따뜻하고 매
화유산이다. 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덕사 대웅전은 그
끄러운 물이 솟아났다.’는 전설을 소개한 바 있다. 천연기념물 황
임존성
제작연도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난 문화유산으로 예산의 역
새의 서식지가 되고, 학을 살린 온천수가 솟아 나오고, 생기 넘치
사와 불교전통의 실제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는 붉은 사과가 자연의 풍요를 공감하게 하는 곳, 예산의 청정한
또한 추사고택과 충의사는 그 자연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
자연과 풍요한 명물을 감상케 하는 예산의 명소가 아닐 수 없다.
1.지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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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의뿌리예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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