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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일은 아산시 영인면 백석포리에서 아버지 문병희와 어머니 진영하 사이에 무녀 독



자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동네는 마을 입구에 흰 조약돌이 많다하여 유래 되었다. 옛


날에는배가많이드나드는포구가있어서자연적으로상업과어업이발달하였었으나아


산만방조제를막고나서포구가없어지고대신에넓은간척지가조성되어현재는벼농사

를 주로 하는 부농 부락이다. 마을 뒤 포구에는 날마다 통통배가 드나들면서 소금, 새우
젓이나숭어등각종생선들을팔고사는장사치들로늘북적이고큰창고가있었다.사람
들이많이몰리다보니자연스럽게상권이형성되어식당,대폿집기생집들이들어서고구
한말에는성공회교회가들어오면서마을사람들이새로운종교에믿음을가지게되었다.
그는부농의아들로태어났다.할아버지가모아놓은재산은이동네에서제일가는부자
였다. 집에는 소작농을 하는 사람들과 머슴들이 항상 북적거렸고 할아버지는 손자(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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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를끔찍이사랑하여발에흙이묻지않았다.가령서당에오고갈때에는머슴들이업어
다주었고면소재지나장터에가려면할아버지가자전거로태우고다녔는데이자전거는
인근동네에서도한대밖에없었다.
그와백석포아이들은십리길에있는영인면소재국민학교에다니고있었는데비나눈
이내리면진흙길로변하여여간어렵고불편한게아니었지만동네아이들은날마다이길
을걸어다녔다.하지만그의할아버지는금지옥엽손자가먼길걸어학교가는게여간딱
하고불안한게아닌지라당신이자전거로하루도거르지않고태워다주고데려오곤하였
다. 그가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동네에서는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백석포에 초등학교를 건
립하자는여론이형성되고있었다.추진위원회가꾸려지고지역유지,서울에사는친인척
등 각 기관단체를 대상으로 모금 운동을 하여 마을 북쪽에 있는 공동묘지 자리를 구입하
고교육청에기부하면서1965년영인초등학교백석포분교를시작되었는데당시1학년들
은마을회관한쪽공간과방앗간방을교실로사용하였다.
백석포1,2구마을과모원리,구성리1,2구5개마을의아이들이1967년백석포분교장
이되면서교장실1개와교무실4개변소등을갖춘학교에서수업을받게되었다.한학급
에50~60명의아이들이콩나물시루같은교실에서공부를하는데절반의학생들이글씨
도몰랐다.부유하게자란그는개인과외선생님의지도덕분에늘1등을하였다.또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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