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928페이지

360페이지 본문시작

박석주는아산시송악면동화2리에서아버지박만길과어머니장기자사이에3남2녀

남,
중둘째로태어났다.부모님은대대로농사를지으며사셨는데지리적여건상논농사보다


는밭농사가주를이루었다.동화2리마을은서봉골과백학동이라고불렸는데이곳에백


학이모여놀았다하고이곳에송장을아무곳에버려도별탈이안생길정도였다고한다.


부모님의 고향은 궁평(송악)저수지가 고향이다. 궁평 저수지가 마을이고 이 마을에서 논


농사와밭농사를짓고사셨는데해방되고이듬해농업용수를저장하기위해둑을쌓아댐

5
(송악저수지)을 만들면서 마을과 농경지는 모두 물속에 잠기면서 수몰 지역이 되었다. 이
로인해동네사람들이보상을받고이주해온곳이지금의마을이다.
그의 형과 마을 선배들은 송악면 소재지가 있는 송남국민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1954
360
년 박석주가 만 2살이 되던 해에 송남국민학교 동화분교장에서 동화국민학교로 승격 분
리되면서 정식학교가 되었는데 교실 6칸과 교무실 1개가 있었으며 학생 수는 7개 마을에
12개부락에서약350명이학교에다녔다.학교운동장은학생들이체육활동을할수있
는여건이안되었기에마을어르신들이수시로오셔서돌과자갈을골라내시고평탄작업
을하였다.고학년형들도수업시간외특별시간에운동장에서돌을줍고나무를심곤하
였다.교장선생님사택을지으면서일부어르신들은우물을팠는데두레박으로길어올리
는 방식이었고 선생님께서는 저학년은 위험하니 우물가에 가지말라고 늘 말씀 하셨는데
우물에빠지는학생이있었다.
그가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학급의 학생 수는 약 50명에서
55명 정도였다. 한 반에서 책가방을 들고 다니던 학생은 1~2명에 불과하였고 거의 보자
기에책을담아다녔다.점심도시락을싸가지고오는학생도거의없었고모두가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식은 꽁당보리밥이나 감자 삶아 놓은 것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곤 하였
다. 어느 날부터인가 정부에서 강냉이 가루를 학교에 보냈는데 선생님들이 죽을 끓여 놓
으면동네아주머니들이오셔서학생들에게나누어주었는데그날은모처럼배부르게먹
는날이기도하였다.학교앞에는잡다한물건을파는가게와막걸리를파는대폿집그리
고 방앗간이 있었는데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간혹 동네 어르신들이 방아 찧

360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