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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가초의에게써보낸작품가운데하나가이다.이작품역시초의가보내준차
에 대한 답례로 쓴 것인데, 협서에 “초의가 스스로 만든 차를 보내왔는데 몽정차나 노아차 못지
않았다.이글씨를써서보답하는데의필의(筆意)로쓴다”고하였다.
는한나라광화(光化)6년(183),하북성직례현원씨마을백석산산신의덕을칭송
하기위해세운비이다.추사는이을순후하면서도예스러운멋이넘치는졸한가운데교
18)
한맛이숨어있는글씨로썼다.
93.백파선사비문
ㆍ개요(synopsis)
추사의 명작 중에 불후의 명작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백파선사비문
이다.추사말년인70세때쓴것으로고창선운사에있다.이는추사
가 백파선사와 벌인 선논쟁에 대한 인연으로 쓰게 되었는데 그 이면
에는자신이백파망증15조라며무례했던것에대한사죄의뜻이담
겨있기도하다.
ㆍ내용(contents)
조선후기의고승인백파긍선(白坡亘璇1767~1852)이입적한지3
년후인1855년추사나이70세때(철종6년)백파문도들의요청으
로추사가비문을직접짓고쓴글이이다.이비석은
문도들에의해1858년에세워졌다.
추사의둘도없는공문(空門)의친구인초의스님은당대최고의선지
식인백파스님과선문요지(禪門要旨)에관해왕복토론을벌였다.
이논쟁과도연관이있겠지만추사또한제주도시절인1853년백파스님과선(禪)에관하여격
렬한 왕복 토론을 벌였다. “이때 토론한 글을 세상 사람들은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나(추
사)와 백파 스님은 그런 차원이 아닌 진정한 도(道)의 경지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기에 전면에 대
기대용(大機大用)큰글씨를써야만한다.”고추사는말했다.이비는추사과천시절최고가는해
서와행서글씨이다.
이비는전라북도고창선운사에있는데비문에따르면,우리나라에는근세에율사(律師)의종파
가없었는데오직백파(白坡)만이이에해당할만하며,대기(大機)와대용(大用)은백파가팔십년
동안착수하고힘을쏟은분야이기때문에비문의제목을‘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華嚴
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라고하였다고한다.또백파의비석에새길글자를지음에있어,대
기대용(大機大用)이라는한구절을큰글씨로특별히쓰지않는다면백파의비(碑)로서부족할것
19)
이기에이렇게써서설두(薛竇)와백암(白巖)등백파의여러문도(門徒)에게보인다고하였다.
18)유홍준,『완당평전』2,학고재,2002,719~721쪽.
19)과천문화원,『추사글씨탁본전』,2004,96~97쪽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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