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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자암의 친필 작품은 보기가 어렵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중국 사람
들이 공의 글씨를 보배로 여긴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글을 쓰지 않았으므로 그
의 필적이 세상에 드물고 자암 글씨를 좋아한 중국인들이 거의 수집해 갔다고
한다.
1513년(중종8).26세때별시문과을과에급제하여승문부정자,홍문박사,
이조좌랑,교리,사성등을지냈다.
구전에 의하면 어느 날 김구가 옥당에서 숙직을 하고 있을 때 촛불을 밝히
고 글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뜻밖에 중종임금
이별감을데리고있으므로엎드리니중종이이르기를“달이밝은데글읽는소
리가 들리기에 내 여길 왔으니 어찌 군신의 예가 필요 있으리오. 친구로서 서
로 대함이 마땅하도다.”하고 술을 함께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한 남해에 있는 자암김선생적려유허추모비 비문에도“어느 달 밝은 밤 옥당에
서 소리 내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마침 완월하러 뜰에 나와 있던 임금이 그 낭랑
한 목소리에 매혹되어 주연을 함께 베풀었다. 선생은 즉석에서 임금께 노래 두
수를 바치고 고금에 유례없이 돈피로 만든 갓옷을 하사 받은 은총을 입기도 하
였다. 이렇게 관직에 있으면서도 늘 틈틈이 독서를 즐기면서 작시 하였고 서예
를즐기는문학가인동시에예술가였던것이다.
그러나 때는 한가롭지 않았다. 중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것도 연산군의 악
정으로 무오·갑자사화가 일어났고 결국은 1506년에 중종반정으로 이어진 것
이다.
연산군의 부친인 성종은 성군이었다. 성종에게 왕을 받은 맏아들 연산군
은 성종의 후궁 정씨와 엄씨에 의해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가 내쫓겨 사사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산군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
였고 드디어 정씨 소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각도에 채
홍사와 채청사를 파견하여 미녀와 양마를 징발하고 성균관을 유흥장으로, 경연
과 사간원을 폐지하고 모친 윤씨 사사에 관련된 선비들을 학살하였다. 또한 국
사인 원각사를 기생양성소로, 한글서적을 불태워 국문 쇠퇴를 초래하는 악정을
되풀이하였다.
이에 정세가 극도로 악화되자 이러한 상황을 위기로 느낀 지중추부사 박원
종과 이조참판 성희안, 이조판서 유순정 등이 주동이 되어 연산군을 폐위하고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을 추대하여 왕위를 계승케 하였다. 진성대군이
1장자암김구│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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