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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노래하고 읊조리고 칭찬하고 기리며 당대에만 그럴 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전함은 한(漢)·진(晋) 이후로 훌륭한 관리가 얼마나 많았는가? 참으로 옛사람의 목민
의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에게 유리하며 그 지위에 청렴한 까닭으로 백성들이 다
감동하고 성심으로 좇으며 능히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오호라! 학교를
세움은 옛날이고, 근년에 들어서는 우리 공자님을 주로 섬겨 봄가을로 간단한 제사의
장소로 삼았었다. 역대의 선비 현인들과 이제 우리 동방의 앞선 여러 선생들을 또
받들어 모시게 되었으니 학교의 관계되는 바가 어찌 중하고 크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덕과 은혜로 세운 학교는 원래 가난하고 검소하며 대개 온갖 경영에
관한 일들에 애석함이 없었겠는가? 술동이와 술잔이 다 깨졌고, 제수(祭需)들을
다스림도 더욱 구차하고 간단해져서 앞서 이끌던 선비들이 흉년을 한탄한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던 중 임오년(1822)에 송종수님이 이른 나이에 청렴한 덕으로 이
읍을 처음 맡게 되어 힘을 행사함이 여유롭고, 말소리가 온화하였다. 이에 그 다음해
인 계미년(1823) 가을에 유사(有司)가 재정이 없음을 송원님에게 말하니, 원님께서
말없이 유사를 제치고 몸소 이리저리 문의하여 드디어 인근의 소금을 팔고 사는
시세(市稅)에 특히 수입 항목을 두어 이를 도장처(都將處)로 주어 매번 제사 지낼
때마다 15량(兩)씩 향교 안에 들여놓아 해마다 보충 비용으로 돕도록 하였다. 아아,
송원님의 은혜는 진정 이른바 죽을 때까지도 능히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돌아보면
향교의 일에 뜻을 지니고도 나아가지 못함이 몇 년 동안이던가? 이번에 요행히
힘을 합해서 다시 제사 때에 쓸 제수(祭需)들이나 제구(祭具)들을 갖추고 혹 갖추어지
지 않은 나머지들, 예를 들면 기왓장이 새거나 흙벽이 떨어진 것들을 찾아내 수리했으
니, 이는 다만 향교의 영광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사림에도 생색이 나는 일이 되었다.
서전(書傳)에 이르기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재물”이 ‘은혜’라고 하였으니,
이제 원님의 나눈 바는 한 때의 은혜일 뿐 만이 아니라 저 소금바다를 바라보아
다함이 없는 것과 같으니, 그런즉 원님의 은혜는 어찌 다만 노래하고 읊고 칭찬하고
기림으로써 당대에 자랑하고 후대에 전할 뿐이겠는가? 풍성하도다. 원님의 은혜여!
이제 이후로부터 이 집에 올라와 책임을 맡은 모든 사람들이 원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그 맑은 덕에 감복할 따름일 것이다.
갑신년(1824) 9월 일 재임(齋任) 이인배(李仁培)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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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지역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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