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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을 지낸 남간(南簡)이다. 아버지는 호군을 지낸 남건(南健)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남열은 4남3녀 중 셋째 아들이며 자(字)는 효보(孝甫)이고 부사맹(副司猛-종8품)을 지냈다.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로 이구형(李龜馨)의 딸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1465년(세조 11)에 세조가 온양의 온천행궁에 와서 머물 때 이구형(李龜馨)이 재
산이 풍부하고 혼인할 만한 딸이 있음을 듣고 직제학 남간(南簡)의 손자 남열(南悅)과 혼인하도록 명
하여 호종했던 양반·관원들이 주선을 해서 바로 혼례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열은 효량(孝良)과 효양(孝讓) 등 2남3녀를 두었다. 큰아들 남효량은 후손이 없고 둘째아들 남효
양이 병절교위에 오르고 순제(舜濟)와 순치(舜治) 등 2남3녀를 두면서 자손이 퍼지고 남순제의 아들
대명(大溟)이 선무정난2등 공신에 오르는 등 점차 입신양명하게 된다.
남열의 묘는 염치읍 방현리 쇠일 마을 뒷산 중턱에 있으며 후손들은 염치읍 방현리, 음봉면 동천리,
탕정면 명암리 등을 중심으로 각지에 퍼져 살고 있다.
-남열의 묘-
[37] 의령남씨 남확
| 南擴
<1485년(성종16년)~1547년(명종2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의령남씨(宜寧南氏) 11세이고 직제학공파 중 목사공파 도고 지역 입향조이
다. 영의정을 지낸 충경공(忠景公) 남재(南在)의 6세손이자 목사공파(牧使公派) 파조(派祖) 남척(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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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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