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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타는 등 무예가 출중하고 성품이 강직하여 끝까지 태종의 신임을 받았으며 높은 관직에 올라서도 늘
겸손하고 절제하여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가 64세에 졸하자 3일 동안 조정을 철폐하고 치제(致祭)하도록
하였으며 왕비와 세자도 치전(致奠)하였다. 정양(靖襄)이라는 시호와 부조묘(不 廟)가 내려졌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세거(世居)하는 아산시 도고면 신통리 인근 마을인 선장면 신성리 삼봉산 자락에 그 사당
이 있다. 그의 묘는 경기도 양주에 있고 후손으로 그의 6세손이 되는 정방(正邦)이 도고 지역으로 처음 내
려왔는데 이 지역에 그의 부조묘가 세워진 경위는 불확실하다.
[50] 심정방
沈正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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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인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풍산 심씨 아산 도고 지역 입향조(入鄕祖)이다. 조선 초의 좌
명공신 풍산군(豊山君) 구령(龜齡)의 6세손이며 한성부판관 언달(彦達)의 손자이다. 1534년(중종 29)에
진사과, 1549년(명종 4)에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참교(參校)를 지낸 연(淵)의 계자(系子)이다. 자는 정
숙(正淑)이다. 부인은 평산(平山) 박(朴)씨로 참판 신(紳)의 딸이다. 왜 이곳으로 왔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도고면 신통리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여 풍산 심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후에 가선대부 형조참판에 추증되고 풍계군(豊溪君)에 책봉되었다. 묘는 도고면 신통리 통산(通山)에 있
으며 묘표가 있다. 그의 묘 아래에는 갑산도호부사를 지내고 남풍군(南豊君)에 봉해진 아들 동명(東明)의
묘가 있다.
<심동명의 묘>
<심정방의 묘>
[51] 안거인
安居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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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順興) 안(安)씨 영인 지역(성내리) 입향조이다. 대사헌·대제학·우참찬 등을 지낸 문숙공(文肅公)
숭선(崇善)의 5세손이며 형조정랑·이천부사 등을 지낸 우삼(友參, 1441~1494)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어
매장군 행 충좌위 부사과를 지내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직된 휘(煇)이고 어머니는 진주(晉州) 유
(柳)씨이다. 자(字)는 자영(子榮)이고 부인은 진주 소(蘇)씨이다. 신창현 지역 입향조인 수인(守仁)과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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