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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통정대부행용양위부호군김응희효자문
효자 통정대부 행용양위부호군 김공 휘(諱) 응희는 자는 원지(元之) 경주인이라 고려 태사
인관(仁琯)이 먼 조상이라 팔 세손을 전하여 오다 휘(諱) 자수(自粹) 호 상촌(桑村)에 이르러 조선
태종때 의(義)를 지키다 죽으니 서원에 제향하여 내려오다가 팔 세손 휘(諱) 홍익(弘翼)이 병자
호란을 당하여 굽히지 않고 적과 싸워 친히 시호를 충민공 이라하고 육 세손에 이르러 처
사공 휘(諱) 노연(魯 ) 즉 공의 아버지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천품이 다르고 어버이 곁에 놀
적에 기가 순하고 마음이 좋아 특별한 과일이나 음식은 반드시 부모님께 돌아와 드리니 정
성이 자오반포(慈烏反哺 : 까마귀는 어릴적에는 어미가 기르고 커서는 새끼가 어미를 먹인다는 효조이다)와 같고
염소가 궤촉(염소는 어미 젖을 먹을 적에 앞무릎을 꿇고 먹는다)하듯 하였다. 약관이 되어서는 순효지행
(純孝至行 : 효의 행실)을 세웠다. 본디 뜻이 게으름이 없고 자기로 말미암지 않고 자기 뜻으로
오로지 전제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는 정성이 옥구슬을 가득 담은 그릇을 받들 듯 하였
다. 여름에는 덥지 않게 부채질을 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며 하룻밤 사이 다섯 번 일어
나 살피었다. 쌀 말되를 장만하고 채소를 팔아 생업을 하니 변변치 않은 음식이었으나 봉
양을 하였다. 겨울엔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봉양하고 또 산에 가서 나무를 하였다. 처사
공(부친)이 취하여 돌아올 때는 업고 서문에 이르니 태평지세 때를 놓지않고 편안하게 봉양
하는 물건이 다 갖추지 않음이 없으니 슬하에 자손이 뜻을 어김이 없고 작은 직책도 나아
지 않고 부모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부모가 병이 드니 의복을 풀지 않고 병환을 살피고 의
원을 모셔와 약을 쓰고 분뇨를 맛보며 추위를 무릅쓰고 기도하니 눈물이 고드름같이 하더
라. 정년에 돌아가시니 수위와 그릇 등 제절을 정성을 다하고 조석으로 묘소에 애통해하니
묘 앞에 풀이 나지 않았다. 상탑(喪榻) 전에 피눈물을 흘리었다. 아들과 조카는 기르지 않고
거상에 공경을 지극히 하는 것이 종신토록 부모를 사모하는 바라 천분년간에 상해(桑海) 유
민이 효로 황금을 점지 받고 효가 지극하니 도설전(棹楔典)에 연리지 나뭇가지 잎에 봉추(鳳
雛)가 혜택을 입는다 하니 뭇새는 그렇지 않게 그 손자 황제가 적덕과 효를 세상에 내고자
하나 그 할아버지의 업적이 땅에 떨어질까 두려워 그 효행의 행장을 내게 지어줄 것을 청
하였다. 오랜 세월 세상에 나타낸 글로 마땅한 글로 돌에 새기니 피하여 옮기지 못할 것은
효도와 임금에 충의와 기치를 들어 적을 토벌하는 것이라. 친족에게 화목하고 흉년에 가산
을 사재로 규휼하니 충과 효와 인(仁) 세 가지를 본조(조선) 인물 중에 공이 제일인고로 군자
36_홍성의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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