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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송전
宋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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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은일(隱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병사(兵使) 중기(重器)의 손자이다. 일찍이 아산으로
퇴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아산에 살게 되었다. 호조판서로 증직되었고 묘가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
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다.
[48] 신씨
愼氏-신숙의(淑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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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제13대 왕인 명종(明宗, 1545~1567 재위)의 후궁으로 숙의(淑儀-내명부의 종2품 품계)에 올
랐다. 본관은 거창(居昌)으로, 신홍제(愼弘濟)의 딸이며 어머니는 행주 기(奇)씨다. 임진왜란 때 피난해서
아산(영인면 상성리)에 머물렀는데 당시에 아산 현감 권유(權愉)가 그녀를 푸대접했다 해서 1593년 7월에
파직당했다. 이 일로 인해 명종의 다른 후궁들이 피난한 강화·광주(廣州)와 아산의 후궁에게 양식을 제
공하라는 왕명이 내려지기도 했다. 명종과의 사이에 소생은 없었다. 영인면 상성리 산 아래에 신숙의가
머물던 곳으로 추정되는‘궁터’
와‘규모 있는 대문을 봤다’
는 증언이 있다. 궁터에는 얼마 전까지 연못과
연꽃이 있었다고 한다.
[49] 심구령
沈龜齡
<1350(고려 충정왕 2년 )∼ 1413(태종 13년)>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전농시사(典農寺事) 승경(承慶)의 아들이다. 자는
천석(天錫), 호는 병담(屛潭)이다. 뛰어난 무예를 지녀서 이방원(李芳遠)에게 발탁되었다. 1398년(태조 7)
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 때 박원길(朴元吉)·정도전(鄭道傳) 등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다시 1400
년(정종 2)의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도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이방원을 보필해서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
에 책훈되고 풍천군(豊川君)에 봉해졌다. 이어 1406년(태종 6) 겸중군동지총제(兼中軍同知摠制)를 거쳐
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가 되었다. 이 해에 도체찰
사 박자안(朴子安)의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가 되어 남
해안 일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
다. 1409년(태종 9)에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다시 풍산군(豊山君)에 봉해졌고 이후 부진무(副鎭
撫)·겸동지의흥부사(兼同知義興府事)를 역임하였다. 한
때 대간에 의하여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곧 지의흥부사
(知義興府事)로 복귀했고 별시위일번절제사(別侍衛一番
節制使)를 거쳐 판공안부사(判恭安府事)에 이르렀다.
타고난 신분은 높지 않았으나 특히 활을 잘 쏘고 말을
<심구령의 부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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