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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탁
남리
남리
이북
판교
2.
온천과 왕실
온천은 치병과 휴양에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천을 찾아다녔으며 특히 왕실과 고관들의 행차가 빈번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 전기에는 국가에서
이미 발견되어 있는 온천에다가 탕실이나 옥사를 지어 기유하기 편리하도록 하는 한편 입욕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특히 세종
20
년에는 전국의 온천을 탐색하여 보고하도록 어명을 내리기도 하였다
온양온천은 한양에서
200
여 리에 불과한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조선역대의 국왕과 왕비 및 왕
자의 행차가 빈번하여 한양에서 온양 온천에 이르는 연도제읍에서는 막중한 부담이 되었다
영조
26 (1750 ) 9
12
일에 왕이 이궁을 출발하여 온양온천에
하였다가
9
28
일 환궁하기
까지
16
일 동안에 충청도의 영접차비는 다음과 같았다
충청도 도차원인 충추 목사가 총지휘관이 되어 각참의 도차원을 지도 했으며 미가가 직산에 당도하
기 수일 전에 홍주목사가 직산참의 도차원이 되어 직산현감 영춘현감 염포현감 예산현감 청안현감
단양군수 한산군수 연산현감 신창현감 음성현감 청산현감 문의현감 전의현감 옥천군수 등
14
개 읍
의 수령을 각도차원으로 차출하여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미가를 영접하였다.
다음의 천안참 도차원으로는 청주목사가 차출되어 찬안군수 연산현감 진잠현감 음성현감 신창현감
은율현감 예산현감 석성현감 정산현감 서산군수 보은현감 등
11
개 읍의 수령을 각도차원으로 거느
리고 영접의 준비를 갖추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온양참 도차원으로는 청풍부사가 차출되어 온양군수 괴산군수 면천군수 연기군수
연산현감 신창현감 해미현감 전의 현감 진천현감 부여현감 목천현감 공주판관 회덕현감 서산군수
결성현감 금정찰방 제천현감 태안군수 홍산현감 영동현감 아산현감 청양현감 연출현감 덕산현감
보령현감 연원찰방 성환찰방 회인현감 등
28
개 읍의 수령을 각도차원으로 차출하여 어가영접의 만반
준비에 임하였다.
각참의 각무차원으로 충청동 관하의 수령들이 총동원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수령
1
2 3
참의 차원을 겸임하기도 했으며 연도의 백성들은 도로부역 교량가설 청소 물자조달 등으로 고초가
지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행정관할구역의 규모로서는 현 에 불과한 온양을 군 으로 승격시키는 특전을
‘ ’
‘ ’
가지게 된 것은 세종
24 (1442 )
년 부터인데 그것은 오로지 어가의 온천행행의 덕택이었다 그리고
년마다 시행되는 식년 자 묘 오 계 유 무과의 향시도
9
이 온천의 덕택이었다.
온양에서 시행되는 무과의 향시는 식년시와 별시인 경우에 좌도출신
12 ,
인 우도출신
13
인을 각각 합
격시켰으며 대증광시인 경우는 좌도에서
13
인 우도에서
14
인을 각각 합격시켰다 그리고 국왕이 온천
에 임행할 때는 특별히 그 기념으로 과거를 시행하였으므로 이 또한 온천의 혜택이었다 이와 같은 거
국적인 행사가 자주 있어온 온양은 자연히 유흥업 숙박업 요식업 등이 번창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국왕이 온양온천에 임행한 기록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1)
세종대왕의 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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