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9페이지

349페이지 본문시작

위의 기사에서는 ‘호서 내포 18고을’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언
에 없어 이 지역 전체를 ‘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가야산 북동쪽의 모든 물줄기
급한 호서 내포의 18고을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리는 먼저 조선 후기 홍주진관(洪
는 북류하여 아산만으로 들어가는데, 바로 이 내의 본줄기인 삽교천(揷橋川, 옛 이름은 宣
州鎭管)에 속한 18개 군현을 떠올릴 수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당시 홍주
化川)은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유역 평야가 가장 넓어 이 지역을 내포 중의 내포로 손꼽는다
진관에는 서천·면천·서산·태안·온양·평택·홍산·덕산·청양·남포·비인·결성·보령·아산·
고 하였다.
신창·예산·해미·당진 등 모두 18개 군현이 속해 있었다. 사실 홍주는 조선 초기부터 충청도
내포 지역은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뱃길과 포구가 발달하였다. 이중환은 『택
서부 지역의 계수관 고을로써,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리지』(복거총론 생리조)에서 내포 지방에서는 아산의 공세포와 덕산의 유궁포, 홍주의 광천
의하면 수령으로 정3품 목사가 파견되고 있었고, 홍주목사는 홍주진의 병마첨절제사를 겸
(廣川), 서산의 성연을 유통이 활발한 포구로 들고 있다.
대(兼帶)하였으며, 홍주진관에 소속된 고을은 홍주 외에 평택·아산·온양·신창·면천·당진·
육로는 내포 지방이 서해안으로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역로의 주요 간선로에서
해미·서산·태안·덕산·예산·대흥·결성·청양·보령·남포·비인·홍산·서천 등이었다.
제외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전라도에 이르는 주요 간선 도로가 충청도에서는 (경기) 화성(華
城)-성환(成歡)-신은(新恩 : 현 천안 신부동)-금제(金蹄 : 현 천안 풍세)-광정(廣程 : 현 공
홍주진관이 내포와 연계되어 언급된 사례는 이미 선조 27년(1594)의 기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비변사가 선조에게 외방 진관의 법에 대해 아뢰는 과정에서 ‘공주(公州) 진관의 법
주 정안)-일신(日新 : 현 공주 신관동)-경천(敬川 : 현 공주 계룡면)-(전라) 삼례(參禮)의 길
이 잘 다스려질 경우 금강 일대는 근심할 것이 없을 것이며, 홍주(洪州) 진관의 법이 잘 다스
을 지나고 있었다. 따라서 내포 지방은 차령에서 성주산·오서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에
려질 경우 내포연해등지(內浦沿海等地)를 모두 방어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의해 주요 역로에서 비켜나 있었다.
한편 오늘날의 천주교에서는 아산·온양·신창·예산·대흥·면천·당진·덕산·해미·홍주 등지
내포 지방 내에서는 가야산을 제외하면 높은 산이 별로 없었으므로 수로와 육로를 통한
를 상부내포(上部內浦)라고 하고, 태안·서산·결성·보령·청양·남포·비인·서천·한산·홍산 등
교통이 활발하였다. 그러나 내포 지방에서 충청도관찰사영에 해당하는 공주(公州)와의 통
지를 하부내포(下部內浦)라고 부르며, 심지어는 금강가에 위치한 공주까지도 내포 교회의 범
교는 예산에서 차령(車嶺 = 車踰嶺, 차동) 고개를 넘어 유구(維鳩)-단평(丹平: 현 공주 우
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내포의 개념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 아니다. 처음 내포
성면 단지리)-공주로 통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내포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육로는 아
지방에 전래된 천주교가 점차 공주를 비롯한 내륙으로 확산된 상황의 반영으로 추측된다.
산만이 내륙 깊숙이 만곡(彎曲)되어 있고 삽교천의 하구가 넓었으므로, 삽교천의 중·상류에
내포는 동남쪽으로는 차령산맥을 경계로 공주(公州)와 맞닿아 있고, 북서쪽으로는 서해
위치한 다리나 나루를 이용해야만 하였다.
바다가 펼쳐져 있으므로 지형적으로 폐쇄적인 모습을 띄고 있다. 차령산맥이라고 일컫는 금
북정맥(錦北正脈)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성주산에서 휘돌아 북쪽으로 달려 형성된 가야
2.예산지역의역사적성격
정맥(伽倻正脈)은 가야산에 이르러 가장 우뚝 솟아나 태안반도에 군림한다.
최완수는 금북정맥의 본줄기가 오서산에서 북진하면서 서쪽으로 부채살처럼 펼쳐지는
1)문화수용의창구-진취적인개방성
많은 지맥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복잡한 대소반도가 형성되고 그 산맥 사이를 따라 크고 작
은 시냇물이 흐르게 되는데, 이곳 지형이 전체적으로 완만하다고 한다. 게다가 바다의 조석
간만의 차이가 8~9m에 이르는 큰 격차를 보이므로 시내마다 거의 모두 갯물이 역류하여 중
이상과 같은 내포의 지리적 환경은 내포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게 하였다. 우리
하류 지역은 바다와 직결되므로 수십 리 혹은 백여 리 물길이 내륙으로 깊이 들어오며 바닷
역사에서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을 때에는 내포 지방이 바다를 통한 외국 문물 수용의 창
물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곳곳에 안개[內浦=내륙 깊숙한 곳에 형성된 포구]가 형성될 수밖
구 역할을 해왔다.
7.내포의뿌리,예산의비전
349
348
내포의뿌리예산학

34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