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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학생이 아닌 학교 직원으로 왔을 때에는 많이 변해있었다. 번듯한 교실과 교무실,

남,
별도로 있는 교장실과 숙직실 모든 게 학교다운 모습이었다. 운동장에도 골대와 철봉 등


각종운동기구가있었다.무엇보다좋았던것은전기가들어와저녁에도대낮처럼환하게


교실을 밝히고 있었고 전화도 개통되어 있었다. 전에는 추운 겨울날 동네 분들이 솔방울


과장작을가지고와서학교난방을해주셨는데,이제는조개탄으로난방을하고있었다.


그는 모교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동네 애경사 일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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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경우가허다했다.예를들면동네에초상이나면마을이장이그를찾아와부고를돌
려야하니학교등사실에서인쇄를부탁했다.그는거절을못하고등사기를밀면서인쇄를
해주었는데어깨와팔이여간아픈게아니었다.또한학교는도시와시골집을연결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서울 사는 김 씨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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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전화하면김윤직은자전거를타고김씨집에가서서울서전화왔다고알리고김씨는
부지런히학교에와서전화를받으며아들하고통화하면서좋아하였다.이처럼화천국민
학교는동네주민과함께생활하는한가족이었다.
화천국민학교가 개교한지 30여년이 지나면서 학교는 벽지학교로 지정되었고 5년 후에
는 병설유치원도 개원하면서 학생수가 500명에 육박하기도 하였다. 1960대 부터 1980
대 중반까지는 평균 80여명이 꾸준하던 입학생이 어느덧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그 수는 90년대에는 30명대로 떨어졌다. 젊은 청년들이 도시고 빠져나가면서 시골 인구
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 바람은 화천국민학교도 피해갈 수 없었다. 1995년 화천국민
학교는 다시 도고국민학교 화천분교장으로 격하되면서 2005년에는 화천분교가 완전 폐
교되었다.
분교로 격하되면서 뜻있는 사람들이 내 고장 학교 보내기 운동도 하고 주소를 옮겨서
학생들을 데려오기도 하였지만 급격하게 줄어드는 학생들을 더 이상 막아낼 방법이 없었
다.총동창회와지역정치인들에게대안을요구하였지만폐교를막기에는한계가있었다.
김윤직,그도폐교와함께학교를그만두면서학교는수년간방치되어잡초가무성하고
건물도낡았다.김윤직은가끔트랙터를이용해운동장잡초도제거하고울타리보수도하
면서혼자의힘으로근근이지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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