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10페이지

34페이지 본문시작

1장
자암김구
자암 김구는(성종 18~중종 29, 1488~1534년) 안평대군이용, 한호석봉,봉
래양사언과 더불어 조선 초기 4대 서예가 중 한분으로 인수체라는 독특한 필체
를 남겼다. 정암조광조, 충암김정 등 사림들과 함께 도학정치 로 이상사회를 건
설하려다 홍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훈구파의“주초위왕”(조광조가왕이된다)의
계략에 말려 기묘사화를 입게 되었다. 이로 인해 32세에 1519년(중종 14) 11
월 16일에 유배 되었다. 처음 개령(경북김천)으로 귀양 갔다 남해로 옮겨 13년
을 지내는 동안 부모가 다 세상을 떠났다. 신묘년(1531년)에 임피(전북옥구)로
옮겼다가 계사년에 석방되어 예산으로 바삐 돌아가 부모의 무덤에 곡하고 추복
을 입는 정을 펴고자 하며 아침저녁으로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 자리에 풀
과 나무가 모두 말랐고 그로인하여 병을 얻어 1년 만에 죽으니 그의 나이 47세
였다. 선조가 종계변무 때 자암 공이 지은 표문을 써서 명나라의 허락을 얻었다
하여특별히이조참판에추증하고광국종훈에기록했다.
다음은《연려실기술》의기록이다.
“김구의 자는 대유이며, 호는 자암이요, 본관은 광산이다. 무신년(1488년)
에 태어났으며, 예조판서 예몽의 증손이다. 16세에 한성시에 장원했고 정묘년
에 생원시와 진사시 두 시험에서 모두 장원했으며 계유년에 문과에 급제했다.
기묘사화 때 부제학으로서 개령으로 귀양 갔다가 남해로 옮겨 섬 속에서 13년
을 지내는 동안 부모가 다 세상을 떠났다. 신묘년(1531년)에 임피로 옮겼다가
계사년에 석방되자 예산으로 분주히 돌아가 부모의 무덤에 곡하고 추복을 입는
정을 펴고자 하며 조석으로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려 그 자리에 있던 초목이 모
두 말랐고, 인하여 병이 되어 1년 만에 죽으니, 나이 47세였다. 선조가 종계변
무 때에 공이 지은 표문을 써서 명나라의 허락을 얻었다하여 특별히 이조 참판
에 추증하고 광국종훈에 기록했다. 아들 균이 있었는데, 사마시에 장원했으나
일찍죽었다.
1장자암김구│33

34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