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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하고 예도를 의논하였다고 한다. 1601년(선조 34) 무주 현감(茂州縣監), 1608년(광해군 즉위년) 공주목
판관, 1612년(광해군 4) 상의원 별좌(尙衣院別坐), 1618년(광해군 10) 고부군수(古阜郡守) 등을 역임했다.
수령으로 근무하며 청백하다는 평이 널리 알려졌다. 1612년(광해군 4)에는 왜란 때 광해군을 이천(利川)
에서 호종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 상계)에 올랐다.
‘부인 김씨가 광해군의 이
모였으나 준(準)은 시사(時事)를 우탄(優歎)하여 권요(權要)에 굴하지 않았다’
는 기록으로 보아 1623년의
인조반정으로 인해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자 이를 피해 아산현 하도(下道-인주면 대음리)에 은거한 것으
로 보인다. 이때 방축리(防築里-인주면 문방리)에 압해정(壓海亭)을 짓고 거문고와 술로써 즐겼으며 당시
의 문사(文士)들이 시를 지어 그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였다.
[46] 성지민
成至敏
<1643(인조 21년) ~ 1717(숙종 43년)>
<성지민의 묘비>
<성지민의 상석>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창녕 성씨 아산 도고지역 입향조(入鄕祖)다. 우계 혼(渾)
의 현손(玄孫)이고 문준(文濬)의 증손이다. 역( )의 손자이고 직( )의 아들로서 역( )의 계자가 되었으
며 상의원 첨정을 지내고 대사헌에 추증된 구금당(求金堂) 희주(熙胄)의 둘째 아들이다. 자는 여눌(汝訥),
호는 수졸당(守拙堂)이다. 부인은 도고에 내려와 강학했던 포저 조익(趙翼)의 증손녀이자 현령 지강(持綱)
의 딸인 풍양 조(趙)씨와 청주 한(韓)씨 통덕랑 송(松)의 딸이다. 1675년(숙종 1)에 사마시에 합격해서 진
사가 되었으며 1681년(숙종 7)에 장릉참봉에 제수된 뒤 봉사·직장·종부주부·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하
였다. 1689년(숙종 15)에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데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정권에서 쫓겨난 기사
환국 때 정치에서 물러나 신창현, 현재의 도고면 농은리 자은동(自隱洞-잔골)에 내려와 조용히 살게 되었다.
이후 갑술환국(1694년)으로 다시 서인이 집권하자 관직에 나아가 평시령·장예원사의·온양군수·사복
첨정 등을 거쳤다. 이어 평창·마전군수를 지내며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고 이어 공조정랑·장
악원첨정·장흥주부 등을 지냈다. 통훈대부에 올랐으며 묘는 그가 살던 도고 자은동에 있다. 이조판서 한
만유(韓晩裕)가 찬하고 판동령원사 해평 윤씨 윤용구(尹用求)가 썼으며 6세손 직학사 건호(健鎬)가 전(篆)
한 뒤에 7세손 우영(佑永)이 추지(追識)해서 세운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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