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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수사로 있었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를 조련(操鍊) 시키면서 거북선을 만
들었다. 임란이 일어나자 육상에서는 북상하는 왜적을 물리치지 못했지만 해상의
경우 충무공의 힘이 미치는 남해에서는 왜적이 얼씬을 못했다 한다. 정부에서는 남
도의 수군지휘권을 공의 휘하에 두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새로이 통제영(統制
營)을 설치하여 통제사(統制使)에 취임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략으로 인하여 직위가
삭탈(削奪)됨과 동시에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으로 공(公) 대신 통제사가
된 원균(元均)이 왜적에게 대패하면서 전사하자 공은 얼마남지 않은 군사와 선박을
이끌고 진도 벽파진에서 적의 대군을 대파시키고 다시 고금도로 진을 옮겨서 탈출
하려는 소서행장의 선단(船團)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나 왜적은 큰 타격
을 입고 도망갔던 것이다.
공(公)의 전적(戰蹟)에는 이항복(李恒福)의 전라좌수영대첩비(全羅左水營大捷碑),
이민서(李敏敍)의 오계대첩비(嗚梁大捷碑), 정기안(鄭基安)의 제승당 유허비(制勝堂
遺墟碑)·송시열(宋時烈)의 통제영충렬사기(統制營忠烈祠記), 이신명의 고금도유사
기(古今島遺祠記) 등의 많은 비갈(碑碣)이 있으며 공을 봉사(奉祀)사는 곳으로는 순
천(順天)의 충민사(忠愍祠), 해남(海南)의 충무사(忠武祠), 남해(南海)와 통영(統營)
의 충열사(忠烈祠), 아산의 현충사(顯忠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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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아산의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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