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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주 의 인 물
나라를 至極히 사랑했던 내 고장의 先賢
문 극 겸
名宰相
(1122~1189)
충숙공 문극겸 공덕비
문극겸 선생은 고려 명종 때의 재상으로
중부(鄭中夫)가 난을 일으켜 문관을 죽이고
자는 덕병(德柄)이요 시호는 충숙(忠肅)이
또 병졸들을 시켜 궁중 문관들을 죽일 때 마
며 본관은 남평(南平)으로 고려 예종 17년에
침 선생이 병졸들에게 잡혔다. 선생은 병졸
공유(公裕)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집현
들에게‘나는 진정언 문극겸이다. 만일 임금
전 태학사 동북면 병마부판사 지중서 문하
이 내 말을 들었다면 오늘 같은 변이 있겠느
성사 이부상서(集賢殿 太學士 東北面 兵馬
냐?’라고 말을 하고 빨리 죽이라고 하여 이
副判事 知中書 門下省事 吏部尙書)로 시호
상히 여긴 병졸들이 장교 앞에 끌고 가니 우
는 경정공(敬靖公)이며, 인조(仁祖)사당에
리가 말씀은 많이 들었노라 하며 가두었다.
배향되어 있고 조부는 익(翼)이며, 좌복야
임금이 난을 피하여 남으로 가며 마상(馬上)
산기상시 중서시랑 문하평장사 상주 국영동
에서 탄식하기를‘내가 문극겸의 말을 들었
정(左僕耶 散騎常侍 中書侍郞 文下平章事
던들 어찌 오늘 같은 욕(辱)이 있으리오?’라
上柱 國令同正)으로 시호는 경절공(敬節公)
고 탄식하면서 선생의 바른말과 선견(先見)
이다. 백부 공인(公仁)의 주선으로 산정도감
에 탄복하였다.
판관(刪定都監判官)이 되어 과거에 몇 차례
명종(明宗)이 즉위(卽位)하여 제신(諸臣)
응시하였으나 낙제되었고, 1147년 예종 1년
들의 직책을 봉할 때, 선생을 비목에 봉하고
이후 과거에 응시, 급제하여 좌정언(左正言)
이의방(李義方)이 우승선 어사승(右承宣 御
이 되었다.
史承)에 천거하니 문신약(文臣若) 이공승
강직한 성격의 선생은 항상 옳은 말을 임
(李公承)이 화(禍)를 면하였으며 무관들도
금에게 직언(直言)함으로써 임금의 뜻에 거
또한 화를 면하는데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한
슬려 황주(黃州) 판관으로 좌천되었다. 그
다. 임금이 옛일을 생각하여 용호대장군(龍
러나 황주에서 관속과 백성을 사랑하여 선
虎大將軍), 다시 상장군(上將軍)에 명하였
정(善政)을 하니 이를 시기하는 자가 사소
다. 선생은 딸이 있어 이의방의 아우 인(璘)
한 감정으로 임금에게 파직시키라는 상소를
을 사위로 삼아 계사난(癸巳亂) 화를 면할
하여 선생은 또 진주(晋州) 판관으로 좌천
수 있었다. 또한 명종 3년 근신(近臣)이 모
되었다.
여 수주(壽酒)를 올릴 때의 일이다. 밤은 깊
의종 24년(1170년)에 내급사(內給事) 정
었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하여 살펴보니 정
JUL/AUGㆍ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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