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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주 의 인 물
나라를 至極히 사랑했던 내 고장의 先賢
성 제 원
性理學者
선생
(1504~1559)
성제원 선생
조선 明宗 때의 학자, 자는 자경(子敬), 호
하며 세상을 도피할 뜻을 가졌다. 열일곱살
는 동주(東洲), 본관은 창녕(昌寧), 장흥부
때 도학을 전수받기 위하여 유서봉(柳西峯)
사(長興府使) 성몽선(成夢宣)의 아들로 공
문하에서 배우기를 청하니 유공(柳公)은 선
주 달전에서 태어났다.
생이 나이 어리고 성실치 못한 것으로 의심
선생의 5대조 성석용(成石瑢)은 조선조에
하여 거절하였으나 열 번을 찾아가 간청한
벼슬이 대제학(大提學)에 이르렀으며 시호
나머지 비로소 허락을 받았다. 그 후 밤낮을
는 문숙(文肅), 호는 회곡(檜谷)이다. 고조
가리지 않고 땀을 흘리며 학문에 열중한 선
성개(成槪)는 호가 수헌(睡軒)이며, 벼슬이
생은 의지와 기개가 남다르고 배움이 깊고
직제학(直提學),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이
넓어 성리학에 관한 학문의 一家를 이루게
르렀으며, 문장이 뛰어나 위공(魏公), 십사
되었다.
소(十四疏)를 써서 어전(御前)에 올렸다. 증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선생은 낮에
조 성희(成熺)는 호가 인재(仁齋)이며 일찍
는 눕거나 쉬지 않고, 밤에는 자지 않고 수
부터 스승으로 삼을만한 친구들과 더불어
개월 동안 정성으로 보살펴드렸으나 끝내
놀기를 좋아하여 학식이 높고 고명하여 단
별세하자 예를 다하여 모셨으며 그 뒤 집과
종조(端宗朝)에 교리를 역임하였다. 할아버
전답을 과부가 된 누이에게 넘겨주고 공주
지 성담년(成聃年)의 호는 정재이며, 성품이
先塋 아래에 초가집을 짓고 집 뒤에 망묘대
곧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성몽선(成
를 쌓은 채 아침저녁으로 參拜를 하였다. 선
夢仙)의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이며 어릴
생은 양식이 떨어져 끼니를 걸러도 평온한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섬기기를 소홀
마음으로 근심하는 빛이 없었으며 어진 선
히 한 적이 없어 효자로도 알려져 있다.
비와 교분을 나누었으며 모든 사람들과도
이렇게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선생은
스스럼없이 지내 선생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어릴때부터 영리하여 열네살이 되자 곧 학
들은 봄바람에 흐르는 물과 같은 멋이 있다
문에 뜻을 두더니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
고 하였으며 혹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을 등
어나자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당고(黨錮)
진 신선의 기질이 있다고 하였다.
- 후한 때 당나라 사람들이 당한 화를 말함
조정에서는 숨은 학자로서 선생의 인품을
- 의 화가 다시 세상에 일어났나 보다』라고
알고 특별히 벼슬을 주어 군자감주부(軍資
MAY/JUN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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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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