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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의령남씨 남건
| 南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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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의령남씨(宜寧南氏) 12세(世)이며 양정공파(良靖公派) 아산시 지역, 탕정면
용두리 입향조이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남기응(南基應, 71세)씨의 14대조이다.
1442년(세종 24) 문과에 급제한 뒤 통정대부로 봉상시 소윤에 오른 남질(南
, 초명
至)의 현손이
고 천안군수를 지낸 남계응(南繼應)의 증손이며 아산현감을 역임한 남인(南麟)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남필성(南 星, 일명 엽성曄星, ?~?)이며 통정대부로 간성군수를 지냈고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
氏)로 서윤(庶尹)을 지낸 이덕수(李德修)의 딸이다. 남건은 1남2녀 중 외아들이었다.
자는 천행(天行)이며 통정대부로 사헌부 감찰에 올랐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이며 첨정 윤한
(尹澣)의 딸이다. 인근 마을에 파평윤씨 세거지가 있지만 관련이 없다. 그가 이 마을에 자리 잡게 된
연유는 확인되지 않지만, 대략 1550년경으로 추정하면 약 460년 전이다.
남건은 인(寅)과 우(宇) 두 아들을 두었다. 남인은 선무랑에 올랐고 외아들 홍술(弘述)을 두었다. 남
우도 선무랑이 되었고 역시 외아들 홍달(弘達)을 낳았다. 손자 남홍술은 선전관을 지냈고 조천사(朝
天使)가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다가 세상을 떴으며 아들 둘을 남겼다. 손자 남홍달(1585~1650)은 부
호군을 지냈으며 아들 다섯을 두었으니 남건의 증손자 때부터 후손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다.
남건의 묘는 마을 남쪽 산자락 끝 용두뿔에 있다.
-남건의 묘와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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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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