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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시당진의사라진또는변화한마을(섬포함)
통혼례식을 하는 등 당시 구술자가 자라면서 보고 참여했던 생생한 사회상을 구술채록하
였다.
구술을 정리하면 수청리는 크게 3단계로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0년대 이전은 전
통사회와 마찬가지로 당진 시내의 배후 농업지역으로 벼농사와 보리 경작을 주로 하였다.
일부 근교 농업으로 채소를 경작하고 두부를 제조하는 등 도심에 농산물을 제공하는 역할
을하였다.이시기에는생활권이당진과인접하여학교및각종편의시설을당진시내로왕
래하였다. 당진의 정기 5일 장인 당진장에서 시장을 보거나 물건을 내다 팔기도 하였던 것
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인구수는 1구와 2구(약 50가구)를 포함한 수청리 전체 약 100가구 넘
는 500~800여 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까지는 전주 최씨가 주민의 주축을 이
루며다양한공동체행사및축제등공동체활동이활발하였다.
수청리에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구술자의 ‘통나무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당진버스
터미널이기존당진시내에서수청리와인접한원당리로이전신축됨에따라도시화의물결
을 간접적으로 영향 받게 되었다. 기존에 한가한 전원생활과 여유 있는 노후생활을 위해 지
었던 구술자의 통나무집이 버스터미널의 배후상가와 연접한 위치에 있어서, 당초 찻집이나
하려던 것이 음식점으로 바뀌었고 10년 가까이 식당을 운영한 점이 그러하다. 이 시기를 계
기로지역의토지주가외지사람을비롯한투자자들로변화하고지역주민들은자의반,타
의 반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지역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당시 구술자는 이러한 시점에서 본
인의 ‘통나무집’을 중심으로 꾸며놓은 정원과 인근 지역을 공원으로 개발하여 활용하겠다
는 제안을 했다. 또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개발 반대 투쟁을 이끌기도 했지만 이미
개발이 일정 궤도 이상으로 진행된 여건에서 결국 어느 정도 조정하는 수준에서 개발을 더
이상막을수는없었다.
수년간 버스터미널이 있는 원당리와 인접한 지역에서 개발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속화
시킨 계기는(구술자의 구술에는 빠져있다) 역시 당진시청의 이전으로 보인다. 수청리 1구에 2012
년 이전·개청한 당진시청 신청사는 그 자체로도 넓은 면적을 차지했다. 인근의 당진복지타
운등행정기반시설들이지역행정의중심으로이전함에따라수청리주변지역역시빠르
게 도시화 되어 개발을 가속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수청리는 대단위 토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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