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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하수구 수채루다가 그리루 드슈
이거야 그리구 그 동안에 목을 메구 죽었어 딸이 그
래 옛날에는 왕이 삼정승 육판서를 모여놓고 회담을 열었어 회의를 하는 거여 오뉴월에
이 조회를 하는데 이 방 정승의 머리에 서리가 앉았어 그래 불러가지구 물어서 사실대로
얘기한 겨 그래 정승직 박탈과 동시에 그래 그 죽였겄지 사형으루다가 그라구 그 방씨네
덜이 온양으로 낙향하는 거야 그래서 수원 방씨가 원손이구 온양 방씨가 후손이야 방 정
승 때문에 그러키 된 거야.
나 염치 마을 염성리
2 (
조사 일정
?1993. 1. 18.,
박은실 기록
조사 첫날인
1
18 ,
일 숙소에서 출발하여 오후
2
30
분 경에 염성
1
리 노인회관을 방문
하였다 약
15
명의 노인이 있었는데 조사자들이 들어서자 하던 일을 멈추고 조사자들을 반
겨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먼저 한주현 씨가 삼종지도에 대해 말하였고 이어서 이황과 숙종
김삿갓 단종 원효 등등이 지은 한시를 써가며 풀이해 주셨다 이야기 분위기가 조성되자
노인회장인 임공선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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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였으
며 자신이 사명당의 후예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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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이에 질세라 한주현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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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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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의 도움을 얻은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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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등극시간과 더불어 사이가 좋아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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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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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원님과 어떤 부인의 지혜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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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감의 서울구경 을 들려주었으
>
며 단종의 슬픔을 노래한 창을 몇 마디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박만교 씨가 염성리
의 지명유래에 대해 간단히 말해주었고 조사자들은 오후
5
로 향하였다.
이튿날인
19
일 오전
11
30
분경 미리 약속해 두었던 쌍죽리 임만재 씨 댁에 찾아갔으나
마침 장날이어서인지 집에 계시지 않아 조사자들은 서원
2
리로 향하였다 서원리 노인회관
에 찾아갔으나 장년층 서너 명밖에 없었고 또 조사자들이 아무리 취지를 설명하고 부탁을
하여도 마을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노인이 없어서 아는 이야기가 없다고 구연을
거절하였다 노인회관을 나와 마을을 둘러보다가 한 할머니를 만나서 소개받은 분께 찾아갔
으나 역시 허사였고 염성리로 돌아와 중식을 하였다 중식 후 염치읍 사무소에 들러 염치
읍 마을들에 대한 사항을 물었으나 충분한 자료를 얻을 수 없었고 오후
2
시경 사진촬영
을 위해 전날 방문했던 염성 리 노인회관에 다시 찾아갔다 그곳은 인근 마을의 노인들까지
1
합세하여 전날보다 더 성황을 이루었고 전날처럼 한주현 씨의 한시 풀이로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 그리고 임공선 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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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박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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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이 맹구부리라고 불리우게 된 이야기 를 들려주었고 맹사성 이야기
>
가 나오자 맹사성의
18
대 손이라는 맹우제 씨가
<
>
이야기하였다 이어서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던 강일남 씨가 청중들의 부탁으로
<
바느질에는 박사인 박어사 부인 과
>
<
>
현 씨가
<
>, <
오성을 골려준 한음의 부인
>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후
4
30
분 조
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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