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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언양김씨 김효례
| 金孝禮
<1352년(공민왕1년)~?>
고려말기의 문신으로 언양김씨(彦陽金氏) 13세(世)이고 아산시 방축동 희안리 입향조이다. 현재 희
안리에 거주하는 후손 33세(世) 김우영(金宇寧, 74세)씨의 20대조가 된다.
고려 중기의 대장군으로 거란 침입을 격퇴하고 문하시중까지 올랐으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된 위열
공(威烈公) 김취려(金就礪, ?~1234)의 5세손이다. 고조는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른 익대공(翊戴公) 김
전(金佺, ?~1271)이고 증조는 첨의참리를 지낸 문신공(文愼公) 김변(金
)이며 조부는 언양부원군
(彦陽府院君) 정열공(貞烈公) 김윤(金倫, 1277~1348)이다. 아버지는 문과 급제 후 추밀원사에 오른
김희조(金希祖, ?~?)이고 어머니는 해주최씨로 부지밀직 최서(崔瑞)의 딸이다.
그는 세규(世珪), 효례(孝禮) 등 2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대중대부(종3품상)로 성균관 좨주
(祭酒)에 올랐다. 부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언제 왜 방축동 지역으로 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선대는 주로 개성 지역에 살았고 묘는 장단에 있
으나 아버지 김희조의 묘는 울산 언양에 있다. 집안에서 전해지기는 이성계가 권력을 잡은 후에 이주
하였다고 한다. 방축동 일대가 사패지였다고 보며 대략 600여 년 전의 일이니 매우 오래 전에 들어
온 집안이다.
그는 외아들 언경( 鏡)을 두었고 김언경도 외아들 명석(命碩)을 두었으며 김명석이 자영(自渶)과
자형(自泂) 등 아들 둘을 둔 이후 특히 김자영이 네 아들을 두면서 이후 후손이 많아지고 또한 조치
원, 서울, 안성, 공주 등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온양 지역에는 방축동과 점량동, 득산동, 신창
창암리, 도고 기곡리, 배방 장재리 등 각지에 널리 퍼져 있다. 희안 마을에는 주로 선전관공파가 거주
하고 있다.
-언양김씨 세천비-
-김효례 등의 납골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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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인물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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