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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5년(명종 20)에 영의정 이준경(李浚慶)의 중매로 이순신과 결혼하였고 결혼 뒤에 그의 영향으로 이순
신이 본격적으로 무예를 익히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재산을 사위에게 물려주었고 현재 현충사
경내의 고택은 그가 살던 곳이다. 이후 이충무공의 종가에서 외손봉사(外孫奉祀)로 그들 내외의 시제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묘는 현충사 내 고택 뒤쪽 산자락에 있다.
<방진의 묘와 묘표>
[44] 서문택
徐文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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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선조의
부마가 된 달성위(達城尉) 경주(景 雨+周)의 손자이며 직
장(直長) 진리(晉履)의 아들이다. 자는 윤장(潤章)이며 부
인은 남양 홍(洪)씨다. 형 문환(文渙)과 함께 송시열(宋時
烈)문하에 들어가 수학하고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뽑혀 진사가 된 뒤 한때 출사(出仕)하여 광흥창 주부를
지냈다. 광흥창(廣興倉)은 조선시대 호조 산하의 관청으
로 관리들의 녹봉을 관리했으며, 주부(主簿)는 종6품 낭
<서문택의 묘>
관 벼슬이다. 1689년 원주 유생 안전 등이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을 문묘에서 축출할 것과 송시열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자 이를 반박하는 상소를 올렸
다. 아산시 송악면 궁평리 궁들 산 중턱에 부부 합장묘가 있으며 신도비와 묘비가 있다.
[45] 성준
成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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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상곡(桑谷) 석린(石因, 혹은 王+因)의 7세손이다. 문학과
필법이 당시에 이미 추앙되었으며 사계(沙溪-김장생)와 한강(寒崗-정구) 양(兩)선생과 더불어 학문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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