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59페이지

35페이지 본문시작

| 해석 |
3. 홍가신 신도비
〔두전〕판서치사 증우의정 겸 문장공 만전홍선생 신도비
유명조선국 증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영
원부원군 증시 문장공 행분충출기 합모적의 청난공신 숭정대부 형조판서 겸 지의금
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영원군 치사 만전(晩全) 홍선생 신도비명
나이가 많아 관직을 내어놓고 물러났던 형조판서 영원군인 만전(晩全) 홍가신 선
생의 묘는 충남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를 바라보는 남쪽 언덕에 있다. 후진의 학자인
한양 조경(趙絅)은 만전 홍가신 묘비에 아래와 같이 기록하여 말한다.
선생의 휘(諱)는 가신(可臣)이고 자는 흥도(興道)이며, 만전(晩全)은 호인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남양 홍씨(洪氏)는 먼 옛날부터 여러 대를 이어져 내려 왔다. 연산군 때에 이르러
휘(諱) 한(瀚)이 이조참의(吏曹參議)로서 무오년에 사화(史禍)를 입었다. 형장(刑杖)
을 때려 귀양지로 보냈는데, 가던 도중 길에서 돌아가셨다. 이 일이 무오록(戊午錄)
에 실려 있는데 이 분이 바로 선생의 증조부이다.
한이 휘(諱) 윤창(胤昌)을 낳았다. 벼슬이 내섬사판관(內贍寺判官)에 이르렀다. 윤
창이 휘(諱) 온(
)을 낳았다. 벼슬이 장원서 장원(掌苑署 掌苑)에 이르렀다. 이 분
이 선생의 아버지이다. 부인은 흥양 신씨(興陽申氏)로 군수를 지낸 윤필(允弼)의 따
님이다.
선생이 청난공으로 책공되므로써 조부 윤창에게는 이조판서가 증직되었다. 아버지
온에게는 영의정이 증직되었으며 어머니에게는 정경부인이 증직되었다.
선생은 중종 36년인 서기 1541년에 태어났다. 그때 어머니 신부인이 산후병으로
위독하매, 온 집안이 당황하고 조급하여 어린 아이를 돌 볼 겨를도 없이 여러 날이
지났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아이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 했다. 산모의 병환이 조
아산의 神道碑
37

3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