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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들이었다.당시물에빠진남자들이자기친척들만구조했다는이야기도있었고,제삿날



에는 마을의 대부분 집에서 제사를 지냈다. 당시 처녀였던 김현성 님의 고모도 사망하였


다.주민들은사람을많이싣고운항하다가여에부딪쳐전복된것으로추정하고있다.(신

문기사에의하면1930년9월26일14명이사망하였다)
1950년대미네미라고불리는풀등으로바지락을잡으러갔다가배가가라앉는사건도있었다.
구찌마을 주민들은 안면도 남쪽에 썰물 때 나타나는 여에 다니면서 바지락을 잡았다.
1950년대구찌주민들이미네미라는여로바지락을잡으러갔다가배가가라앉는사고가
일어났다.배가없는상황에서물이들어와주민들은급한대로높은곳으로대피했고,이
런 사실을 안 안면도 주민들이 배로 구조해 주었다. 현재 미네미는 안면도 주민들의 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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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되었다.
구찌마을에는방파제가없어도안전하게배를댔다.
구찌마을에서는 북쪽 밤섬근처에 배를 댔다. 이곳에는 방파제 등 파도를 막는 시설이
없었는데, 배를 대는데 지장이 없었다. 만약 서북풍이 강하게 불면 약간 이동하여 딴밤섬
옆에 대면 안전하였다. 다만 배를 대는 곳이 마을과 멀어, 불편하였고 만조 때 마을 앞에
배를댔다.
구찌마을주민들은여파루를다녔다.
구찌마을주민들은원산도와안면도주변에썰물때나타나는바위(여)나풀등에다니
면서해산물을채취하였다.이런일을‘여파루다닌다.’라고하였다.구찌마을주민들이여
파루다닌곳은미네미,검은여,눈풀등이었다.
구찌마을남서쪽에있는염전은외국자본으로만들었다.
구찌마을남서쪽에있던염전은누가처음으로제방을만들었는지모른다.그러나구획
정리를 하여 염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사창에 있는 교회 덕분이었다. 교회에서 외국자
본을끌어들여염전으로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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