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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 지역학으로서의예산학의지속가능성검토
되었고, 이때 예산현도 예산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전에 대흥현은1681년(숙종 7) 대흥군으로승격되었고, 덕산현은 1847
년(헌종 13) 덕산군으로 승격되었다. 그 이유는 왕족의 태(胎)를 봉안한
곳이었기때문이다. 즉대흥군은현종(顯宗)의태실이봉축되었기때문이
고, 덕산군은 원손아지씨(元孫阿只氏)의 태실이 봉축되었기 때문이다.
갑오개혁 때 전국을 23부로 개편할 때 예산군·덕산군·대흥군 3개
군은 홍주부(洪州府)에 소속되었다가, 이듬해인 1896년 충청남도(忠淸南
道)에소속되었다. 1914년전국의행정구역통폐합에따라덕산군(德山面
·古德面·揷橋面·鳳山面)과 대흥군(大興面·光時面·新陽面·峰山面)을
예산군(大述面·任城面·吾可面·新巖面)에 병합하여 12면을 관할하게 되
었다.
2) 내포의 뿌리, 예산
조선시대 이래 ‘내포’라는 용어는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첫째는
좁은 범위를 지칭하는 지명이고, 둘째는 아산만으로 들어오는 삽교천
일대의 수역(水域)를 지칭하는 용어이며, 셋째는 몇 개의 군현 이상의
넓은 범위로서 지역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여기에서는 첫째와
둘째의 내용만 언급하겠다.
첫째 내포가 지명으로 사용된 사례는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확인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한천(無限川)에서 덕산(德山) 경계까지 가는 길이 12리이니, 곧 내포(內浦)
로 왕래하는 대로(大路)이다.
위의 내용은 예산에서 사방으로 연결되는 도로 중 서쪽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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