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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추억만 부등 켜 안고 있다.
보리꺼럭 무더기 위에 소 꼴 한 아름 덮어서 피워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다. 안온함이며, 넉넉함
낸 연기로 물 컷들 쫓아가며 아스라이 올려다
이다. 언제나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으며, 그리
보이는 은하수 너머까지 어린 꿈 띄어보던 곳.
움이 서린 곳이다. 도시의 하늘 넘어 고향이 있다는
병모가지에 새끼줄 길게 묶어 뜰 안 샘물 속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포근해진다.
담가두었다가 꺼낸 막걸리 한 대접 들이켜시며
계룡산 넘어 금강굽이를 지나, 유구 차동고개를
된장 찍은 풋고추 안주에도 백만장자 부럽잖게
넘어, 덕산 재빼기에 올라서면 낮 익은 시야가
즐거워하시던 아버지의 영혼이 계신 곳. 가난 속에
활짝 열린다. 이곳이 바로 내 고향 서산이다.
살아도 가진 자 넘보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굳이 풍수지리학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로지 부도(
)지켜 사셨던 어머님의 영혼이
안기면 스르르 잠이 올 듯 평온한 곳.
계신 곳, 그곳이 바로 내 고향 서산이다.
천수만 대호지 가로막아 넓은 들판 기름지고,
여명의 안개 뽀얗게 흐르고 있는 새벽,
해산물 서식하는 절펀한 갯벌이 풍요롭다. 화려함
삐그덕 대는 대문소리에 선잠 깨 일어나면 아버
없는 외모이듯, 깍쟁이도 없었고, 모난데 없는
지는 벌써 소 꼴 베러 들판에 나가셨고, 어머니는
인심엔 야박함도 없었다. 흡사 버섯 등처럼 둥글
밭에 나가 이슬 젖인 치마폭에 애호박 풋고추
넓적한 초가지붕들이 다소곳이 엎드려 도란대던
한 아름 따 들여 콩밭매기 품앗이 일꾼들의
곳, 감자녹말에 풋 강낭콩 듬성하게 버무린 개떡
쉴 참 먹이 준비로 바쁘셨다.
한쪽도 빠질세라 이웃 간에 서로 나누던 곱디
마지에선 송아지가 방울소리 달랑대며 산골동
고운 인정의 고향이 바로 서산이었다.
네가 메아리치도록 엄매소리 외쳐대고, 새벽부터
껍질 채 갈아 만든 거친 밀개떡 몇 쪽, 게 춤에
동네방네 한 바퀴 쏘아댄 검둥개가 흙투성이
차고 새벽길 헤치며 뱅 기리나, 동 막 바닷가로
꼬리를 살랑대며 아직도 잠 덜 깬 내 앞에 쪼그리고
달려가면 파래 김, 재 나물, 빨이 고동, 능정 게,
앉아 빨간 혓바닥 날름 댈 때면, 어느새 태양은
황발 게가 지천으로 널려있던 바다의 풍요…,
동구봉산 능선위에 불쑥 솟아 이글대는 8월의
이런 것들이 모두 여름철 서산의 풍광이었으며,
하루를 열고 나섰다.
반백년 타향살이에서도 잊어본적 없는 내 고향의
어찌 나만의 추억이겠는가. 같은 시대에 태어나
추억이다.
비슷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던 세대들에겐 거의
노란 꽃잎 머리에 이고 있는 천사의 그림처럼
비슷한 정서일 것이다. 그 옛날 추억 찾아 귀향을
초가집 울타리마다 호박꽃들 듬성하게 피어나고,
꿈꿔보지만 이젠 늦었다. 모두가 변해 고향은
작은 바람에도 눈부시게 뿌려대던 8월 햇살에
이제 타향이 됐다. 내 고향은 서산, 변했기에
마당가 미루나무 키다리 가지마다 매달리듯,
더욱 소중한 추억인가.
떼 지어 날어든 까치소리가 인천으로 돈벌이 갔던
삼촌 소식 기다리게 하던 유년시절의 고향 추억….
밤이면 밀집방석 마당에 깔고 누워, 불 지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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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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