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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가류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고식수법(古
)을 보이고 있으며 전면 쪽으로 후일에 내어
달은 모습의 유구가 지중에 남아 있다.
초창년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482년, 1632년, 1929년에 각각 중수한 기록이 있고 1970넌도에도
개수가 있었다. 가구부(架構 에) 남아 있는 고부재(古
)와 분벽(
)된 벽체, 창호(
) 등이
견실한 고법을 간직하여 조선초기 이전의 건축모습을 전해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맹씨행단의 뒷문으로 나가 약 100m쯤 걸어가면 오래된 정자를 볼 수 있다. 이곳은 맹정승이 당시의
명재상인 방촌(
), 황희(
), 독수와(
), 권진(權 ) 정승과 함께 느티나무 세 그루씩
모두 아홉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구괴정(九槐 )이라 불린다. 삼정승은 이곳에서 시를 읊고, 국정을
논하기도 하였으며 일하는 농민을 불러 위로하며 민심을 살피기도 하였다. 구괴정은 삼정승이 국사를
논한 곳이기 때문에 삼상당(
) 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600여년의 세월에 7그루의 나무는 고사
하였고 2그루의 느티나무만이 남아있다.
현충사
(顯忠祠)
이충무공 난중일기 부 서간첩 임진장초
(국보 제76
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임진왜란(1592~1598) 7년 동안에 싸움터에서 손수 쓴
진중일기(
記)의 이름이다. 난중일기란 본시 특별한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정조 때에 이충무공
전서를 편찬하면서 진중에서 쓴 이 일기를 편찬자들이 편의상“난중일기”
라고 하여 이충무공전서
권5~권8에 걸쳐 수록한 후 난중일기란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난중일기의 특색은 첫째, 계속해서 7년이나 집필하였으므로 분량이 많고 둘째, 생사를 걸고 싸우는
진중의 집필이며 셋째, 일기의 내용으로 보아 공의 엄격한 성품과 진중생
활, 그리고 당시의 국정에 대한 솔직한 감회, 전쟁 후의 비
망록과 군사에 대한 비밀계획, 가족?친지?부하?
장졸(
)?내외 요인들과 내왕한 내용, 부
하들에 대한 상벌, 정사에 관한 서신
교환 등 광범위한 내용이 기
록되어 임진왜란 전체
를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정확하고 필
요한 사료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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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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